삼성 LG SK GS그룹 등 주요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재무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유난히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재무통의 각광은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그늘’도 있다.
○ 막강 파워 삼성의 ‘재무통’
삼성그룹에서는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출신의 권한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 평가다. 정점에는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 겸 부회장이 있다. 이 본부장은 회장실장도 맡고 있어 ‘1인 3역’을 하고 있다. 이건희(李健熙) 회장에 이어 삼성의 ‘넘버 2’로도 불린다.
삼성전자 출신의 김인주(金仁宙) 기업구조조정본부 사장은 이 실장의 직계. 주로 재무담당만 하다가 사장까지 올랐다.
유석렬(柳錫烈) 삼성카드 사장은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서 임원을 지냈다. 최도석(崔道錫)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담당 사장은 이 회사 관리부장과 경리팀장 재경팀장을 거쳤다. 배호원(裵昊元) 삼성증권 사장은 그룹 비서실에서 재무 분야를 오래 맡았고 제진훈(諸振勳) 제일모직 사장은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했다.
○ LG GS SK그룹도 CFO 출신이 주류
LG그룹에선 구조조정본부장 출신의 강유식(姜庾植) ㈜LG 대표이사 부회장이 재무통의 대표 주자. 정병철(鄭炳哲) LGCNS 사장도 LG화학과 LG반도체 LG전자에서 재경분야를 두루 거친 CFO 출신.
또 LG그룹에서 분리된 GS홈쇼핑 강말길(姜末吉) 부회장은 현재의 LG전자에 합병된 ㈜금성통신에 입사해 재경본부장과 관리담당 이사를 지냈다. 옛 재무부 관료출신인 서경석(徐京錫) GS홀딩스 사장도 LG로 옮긴 뒤 주로 재무담당 임원으로 일해 왔다.
김갑렬(金甲烈) GS건설 사장은 LG화학에 입사해 회장실 재무담당 이사와 상무 전무를 거쳐 LG화학과 LG건설(현 GS건설) CFO로 일했다.
역시 LG에서 분리된 LS산전(옛 LG산전)의 김정만(金正萬) 사장은 LG전 재무담당 임원을 지냈다.
SK그룹에서는 김창근(金昌根) SK케미칼 부회장이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으로 일했고 손관호(孫寬昊) SK건설 사장은 SK텔레콤과 구조조정본부 재무파트에서 잔뼈가 굵었다.
○ 재무팀 각광의 명암(明暗)
재무통 출신의 부상(浮上)은 기업들이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확장 위주의 경영을 해 오면서 주로 기획파트와 영업통이 우대받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환란(換亂) 이후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기업들이 재무와 회계 금융 부문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CFO 출신이 잇따라 CEO로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빗장이 풀리면서 주요 그룹이 경영권 방어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도 재무팀 중용의 이유로 꼽힌다. 그룹 오너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CFO의 주가는 올라간다. 실제로 SK는 사모(私募)펀드인 소버린과의 경영권 쟁탈전에 휘말린 뒤 최근 재무 파트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자본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CEO가 환율 변동이나 M&A, 회계 등 전반적인 재무활동을 모르고서는 경영을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늘’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파견 나온 재정경제부 신제윤(申霽潤) 국장은 “CFO 출신 CEO가 많은 것은 그룹들이 그만큼 경영활동의 리스크를 회피하려 한다는 뜻”이라면서도 “CFO 출신이 지나치게 방어적인 경영에 초점을 맞추면 투자 기회를 놓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분야에서 오래 일한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재무통 중용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아 미묘한 대립 기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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