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우량종 소를 생산하는 일을 했지만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생명공학계 스타가 됐다.
국내외에는 의학자도 많고 해외 일류대학에서 최신 생명공학을 공부한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환자의 복제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난치병 치료를 앞당긴 주인공은 황 교수다.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나 ‘영재 교육’을 거치지 않았다. 어릴 때는 남의 소를 키워주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중학교는 친척의 도움으로 간신히 다녔다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면 머리가 특출 나게 좋은 것도 아니다.
황 교수는 박사학위도 국내에서 받은 ‘토종’이다. 어떻게 국제회의에서 발표하고 해외 과학자들과 대화를 하나 싶었는데 혼자 영어를 공부해 웬만한 대화는 통역 없이 한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사이언스지에 처음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는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에 변변하게 논문을 실은 적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소 같은 뚝심이 있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때 그는 집을 팔아 경기도에 동물 실험농장을 만들었다.
서울대 교수 내정이 무산되고 일본에 연구원으로 떠밀려 갔을 때 ‘복제’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그가 복제기술과 조우한 것을 굴뚝산업이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첨단산업으로 거듭난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탐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물 복제로 출발했지만 이번에는 서울대 의대, 미국 피츠버그대 등 화려한 연구진을 조직해 인체를 대상으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냈다. 이젠 과학자이면서 최고경영자(CEO)의 영역까지 넘보는 듯하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텃밭에서 시작해 소처럼 뚜벅뚜벅 세계의 중심으로 걸어간 것이 오늘의 황우석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3년 전 내로라하는 석학들을 물리치고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 씨도 학사 출신에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고3의 황우석이 의대가 아닌 수의대를 지원했을 때 모두 말렸지만 선생님 한 분은 용기를 북돋아줬다고 한다.
“편안하고 잘 닦인 길을 선택하지 않고 황무지를 가려는 네 선택은 앞으로 20∼30년 뒤에 돋보일 것이다”라고.
그분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정말로 황 교수는 그로부터 30여 년 뒤 예상을 뛰어넘는 업적을 이루었다.
엊그제 한국 자동차산업의 대부 정세영 명예회장이 영면했다. 맨손으로 역사를 일궈낸 거목들이 그렇게 가고, 많은 사람이 ‘신화’는 사라졌다고 말하는 지금.
황우석 스토리는 각광받지 못하는 비(非)주류들에게 희망을 준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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