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프랜차이즈 어묵, 꼬치구이 전문점을 30일 새로 여는 이광주(李廣柱·46) 씨는 재기의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 씨는 20일 우리은행에서 2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3월 발표된 정부의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 중 영세 자영업자 신규대출 정책에 따른 우리은행 대출의 첫 수혜자다.
26일 오전 인테리어 공사 중인 가게 앞에서 만난 이 씨는 “기회를 잘 살려서 꼭 재기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13년간 음식점을 경영한 베테랑이지만 2003년 연속되는 불운으로 신용불량자가 됐다.
가전제품 영업사원이었던 이 씨는 1992년 생고기와 감자탕을 취급하는 음식점을 열었다. 장사는 잘 됐다. 외환위기 때도 3000원짜리 점심 메뉴를 개발해 불황을 잘 넘겼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주변에 대형 고깃집과 감자탕집이 대거 들어서자 20평, 50석 규모의 식당으로는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다.
2003년 5월 이 씨는 보신탕집으로 업종을 바꿨다. 지방에서 싼값에 고기를 사와 탕 한 그릇을 6000원에 팔았다. 업종 변경은 성공적이었다.
불행은 그해 말복 즈음 찾아왔다. 중국에서 식용 개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자 손님들은 발걸음을 끊었다.
고민 끝에 같은 해 12월 치킨 호프집으로 다시 메뉴를 바꿨다.
개점 보름 만에 조류독감이 동남아시아를 강타했다. 하루 80만∼90만 원 하던 매상이 20만 원대로 뚝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 인테리어 공사비용으로 지불한 카드 결제 대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연체 한번 안했던 이 씨는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4100만 원을 빚 진 신세가 됐죠. 그해 겨울을 아내, 두 딸(10세, 7세)과 난방 없이 지냈습니다. 가스도 안 들어오고 수도도 곧 끊겼어요. 파출부 일을 나가던 아내가 ‘죽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계속했다. 불황과 겹쳐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04년 10월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찾아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그에게 매달 내야 하는 72만 원은 너무 많았다.
“한두 번 내다가 못 냈습니다. 다시 업종을 바꿔 보려고 하는데 재수 좋게 정부 대책이 나오고 주채무은행인 우리은행에서 연락이 왔죠.”
생계형 자영업자가 대출받을 수 있는 최고금액인 2000만 원을 받은 이 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업종을 변경할 때만 대출을 해 주는 우리은행의 프로그램과 이 씨의 계획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8년 동안 대출금 2000만 원을 갚아 나가게 된다. 대출금은 첫 1년은 매달 이자(연 8%) 13만3000원만 내고 2년째부터는 원금을 균등 분할해 상환한다. 이와 별도로 과거 내지 못했던 72만 원을 매달 신복위에 내야 한다.
대출 심사를 맡았던 우리은행 권석철(權錫哲) 심사역은 “무엇보다도 이 씨의 강력한 재기 의지가 대출 승인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이 씨 식당 근처에 있는 영업점 4곳의 직원들을 서포터스로 지정해 되도록이면 회식을 그곳에서 하도록 할 방침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