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이강운]까다로운 고객 입맛 맞추기

  • 입력 2005년 5월 3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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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이 괜찮으신가요?”

얼마 전 모처럼 가족과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맛있느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좀 생뚱맞지 않나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도 패밀리 레스토랑의 고객 응대 매뉴얼 중 하나였다.

최근 외식업체 ‘베니건스’는 일률적이던 고객 응대 방식을 자체 분석한 고객 유형에 따라 세분화했다.

“웨이브 진 머리에 화려한 옷차림의 여성은 주목받길 원하는 고객. 중앙 테이블로 안내하고 기분 좋은 말로 띄운다. 무채색 컬러에 스포츠형 머리의 손님은 메뉴를 직접 고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끼어들지 말 것. 그저 ‘탁월한 선택’임을 칭송하면서 메뉴에 어울리는 디저트를 제안하라.”

프랑스 화장품 로레알도 한국 소비자라면 기가 질린다고 손사래 친다. 외국에선 제품에 불만이 있으면 환불해 주면 그만이지만 한국에선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거나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소비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 영캐주얼 매장의 직원들도 죽을 맛이다.

요즘 영악한 10대들은 즉석에서 옷을 사지 않는다. 이리저리 들춰보고 ‘디카’로 사진만 찍는다. 이들의 ‘입소문’을 무시할 수 없어 사진 찍고 만져도 그냥 놔둔다고 한다.

똑똑하고 까다로워진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졌다.

최근 제조 유통업체들이 앞 다퉈 소비자 제안 마케팅과 고객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은 소비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무한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못하다.

LG경제연구원 김상일(金相日) 연구원은 “소비자 제안으로 만든 상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처음엔 주목을 받아도 곧 흐지부지된다는 것. 그만큼 소비자 취향이 변화무쌍하다는 증거이다.

명성이 자자한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한국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인터넷과 정보공유, 개방성으로 무장한 한국 소비자의 힘이 커진 탓이다.

지금 한국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주요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 소비자의 안목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외국 업체들이 소비자 껴안기에 적극 나선 만큼 국내 업체들도 바짝 긴장해야 한다.

소비자는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다. 제품에 대한 로열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휴대전화 교체주기가 18개월로 짧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살펴봐야 한다.

쉽게 싫증내고,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그들에게 생산자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경쟁사보다 먼저 제품을 만들어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강운 경제부 차장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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