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제약학과를 졸업한 약사 이경철(李慶哲·30) 씨는 지난해 다국적 제약회사에 입사해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왜 약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이 씨는 “연구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연봉도 약국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약간 많다고 한다.
#사례 2
한국화이자 의학부 이재원(李宰源·34) 부장은 대학병원에서 2년간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다 지난해 직장을 옮겼다. 이 부장은 “치료용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 지원했다”며 “여러 사람과 어울려 팀으로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일한 만큼 성과급이 지급돼 좋다”고 했다.》
병원이나 약국 개업을 포기하고 제약회사에 들어가는 의사, 약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 경쟁 격화로 개업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진출 분야도 연구와 제품개발 외에 기획, 마케팅, 영업, 소비자 상담 등 다양해지는 추세다.
○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자
보령제약 학술마케팅(SA)팀은 팀원 8명 전원이 약사다. 10년간 약국을 운영했던 주경미(朱景美·43·여) 부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며 “약국 운영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의약분업이 실시된 2000년 이후 약국 매출이 크게 줄면서 약사들은 제약회사, 홈쇼핑 등 다른 분야로의 ‘외도’가 늘어나고 있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약국에서 일하지 않고 기업에 입사한 약사는 △2002년 1420명(전체 약사의 5.58%) △2003년 1535명(5.65%) △2004년 1579명(5.94%)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의사들도 연구개발, 경영 등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마케팅 매니저로 옮긴 박상진(35) 부장은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 제약업체들도 적극적
한국아스트라제네카에는 현재 약사 28명, 의사 3명이 일하고 있다. 2001년에만 해도 약사가 12명,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 회사 이승우(李承雨) 대표는 “약사가 영업을 하면 약효를 잘 아는 데다 전문적인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 실적이 좋다”고 귀띔했다.
한국화이자도 2001년 약사 49명, 의사 2명에서 현재 약사 73명, 의사 5명으로 늘었다. 유한양행 한미약품 종근당 녹십자 등도 비슷하다.
약사가 제약사에 채용되면 별도의 수당을 받아 일반직보다 연봉이 300만∼400만 원 많다. 또 경력에 따라 부장, 임원 등으로 대우한다.
의사 역시 부장 이상 직급으로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처우에 대한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동아제약 인사기획팀 성수기(成秀基) 과장은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구개발뿐 아니라 경영기획, 영업 등에서도 약사나 의사를 활용하는 추세가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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