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입국 1시간 20여 분 만인 14일 오전 6시 50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옮겨져 ‘숙박조사’를 받았다.
▽검찰 조사=검찰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조사를 벌였다. 김 전 회장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듯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등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검찰은 조사실에 비상약을 비치했으며 틈틈이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검청사 근처에 앰뷸런스를 대기시켰으며 밤에 잠을 잘 때에도 수사관 2명이 함께 있도록 했다. 아침 식사는 북엇국, 점심 식사는 된장찌개였으나 김 전 회장은 거의 먹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녁 식사 때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며 어느 정도 식욕을 보였다.
검찰은 △41조 원의 분식회계 △10억 원의 불법 대출 △20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25조 원)의 외화 밀반출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김 전 회장은 성실한 태도로 조사에 응했지만 외화 밀반출 혐의에 대해서는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민유태(閔有台)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전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회장이 2003년 1월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을 떠났다”고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검찰이 준비한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 기록은 1t 트럭 1대 분량. 수사 목록 작성에만 3일이 걸렸다.
▽인천공항 도착 상황=오전 5시 25분 아시아나항공 734편으로 인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 전 회장은 진한 감색 양복, 흰색 와이셔츠, 분홍색 넥타이 차림이었지만 초췌해 보였다.
대우사태 피해 소액주주 모임인 ‘대우피해자대책위원회’는 ‘사면 불가’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김 전 회장을 구속하라”고 외치며 김 전 회장에게 물병을 던졌다. 김 전 회장은 경찰특공대 30여 명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경찰차에 올라탔지만 대책위 사람들이 차량으로 몸을 던지면서 차량 뒷유리가 깨지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서 출국하기 전 미리 준비한 대국민사과문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낭독하려 했으나 검찰의 제지를 당했다.
▼대검 11층 1113호는▼
김 전 회장이 조사를 받은 곳은 일명 ‘VIP룸’으로 불리는 11층 1113호 조사실.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 씨, 신승남(愼承男) 전 검찰총장이 이 방에서 조사를 받았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에는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참고인 자격으로 이 방을 사용했다.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 고 최종현(崔鍾賢) SK그룹 회장 등도 이 방을 거쳤다.
대검 조사실 중 가장 넓은 24평의 조사실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다. 소파와 화장실도 갖춰져 있다. 벽에는 자해를 마기 위한 스티로폼이 두껍게 붙여져 있다.
▼어떻게 지냈나▼
검찰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 산둥(山東) 성 옌타이(煙臺) 시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을 끝으로 종적을 감춘 뒤 독일과 수단, 프랑스, 베트남 등에서 생활했다.
2001년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심근경색 수술을 받고 8개월 요양했다고 진술했다.
프랑스 국적은 1987년 4월에 얻었다. 김 전 회장은 “세계 경영의 뜻을 품고 동유럽권 개척에 나섰으나 당시 우리와 미수교 지역인 동유럽권과의 접촉이 어려워 이들 국가와 국교 수립이 이뤄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귀국을 결심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대우그룹 임직원에 대해 확정판결을 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도피 이유에 대해서는 “대우그룹 매각 등 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채권단과 대우그룹 임직원들이 출국을 권유했다”고 답했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
대우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머리 숙여 깊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우그룹의 경영을 총괄했던 제가 좀 더 일찍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점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국가 경제의 활로 개척을 위해 몸 바쳤던 지난 30여 년의 세월은 이미 가슴속 깊이 묻었습니다. 이제 저는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과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자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대우그룹이 예기치 못한 IMF 사태를 맞아 그 격랑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국가 경제에 부담을 드린 것은 전적으로 제 자신의 잘못인 만큼 저는 그 결과에 대한 사법 당국의 조치를 달게 받겠습니다.
저의 잘못으로 인해 크고 작은 희생을 치르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대우와 함께했던 모든 대우 가족 여러분께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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