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소득 카드로 확인한다
부산 북구 금곡동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조모(45) 씨는 소득신고를 해 본 적이 없다. 공사장이나 신발공장에서 하루 일하고 현금으로 수당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사업자는 조 씨에게 지급한 수당을 부풀려 국세청에 신고하는 일이 많았다. 일당으로 3만 원을 주고도 5만 원을 지급했다고 신고하는 식이다. 비용으로 인정받는 금액이 그만큼 많아져 법인세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국세청은 이런 조 씨의 소득을 알 수 없었다. 일하는 곳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근무지별 소득을 합산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내년부터는 달라진다.
우선 사업자는 조 씨의 일당 3만 원을 카드로 지급해야 한다. 저소득층을 고용하는 사업장에 비치되는 ‘EITC카드’로 결제하면 지급 내용이 국세청에 통보된다. 지급액을 부풀릴 여지가 없다.
조 씨는 1년간 받은 임금을 연말에 정산해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이 금액이 ‘EITC카드’로 조 씨에게 지급된 금액과 다르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나선다.
소규모 식당을 하는 김모(50·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씨의 소득신고금액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까지 김 씨는 현금 장사만 했다. 음식값이 싼 데다 식당 손님들의 신용도가 낮아서 대부분 신용카드가 없기 때문. 소득을 낮춰 신고해도 국세청이 실제 소득을 알 길이 없었다.
정부는 직불카드 소득공제 한도를 현행(500만 원)보다 높이고, 직불카드로 할인점과 슈퍼마켓에서 물품대금을 결제할 때 현금서비스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직불카드 이용자가 많아진다. 김 씨는 식당에서 직불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국세청은 김 씨의 소득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소득 파악 왜 하나
이번 소득신고체계 개편은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저소득층으로 분류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다.
1999년 9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도입 당시 소득 파악 체계를 완비하지 못해 최저생계비 일부가 무자격자에게 지급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03년 말 현재 과세당국이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인구는 734만 명. 전체 납세대상 인구(1577만 명)의 46.5%다. 이 비율도 1998년의 41.1%에 비해서는 높아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경준(兪京浚) 연구위원은 “소득 파악 비율이 70%만 되면 EITC 시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부작용 줄일 대안 있어야
저소득층의 소득세 부담이 갑자기 커지면 집단 반발이 생길 수 있다.
일용직 근로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고 자영업자의 수익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소득세마저 증가하면 저소득층의 조세저항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EITC 연구를 주관하는 서울시립대 김태성(金泰星·사회복지학) 교수는 “소득이 갑자기 노출될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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