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최고경영자 - 대학생 멘터링 사례 늘어

  • 입력 2005년 6월 23일 03시 02분


《이화여대 경영학과 3학년 홍한나(21) 씨는 평소에는 여느 대학생처럼 수업과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특별한 일정이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다동빌딩 9층에 있는 동국산업 정문호 사장의 집무실을 찾아가는 일이다. 아버지와 딸처럼 보이는 이들은 멘터(스승)와 멘티(제자) 관계. 지난해 11월 이후 홍 씨는 정 사장에게서 ‘인생’을 지도받는다. 선배가 특정한 후배에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 주는 일대일 인재육성 제도인 멘터링은 기업의 인재 육성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대학생과 멘터링 관계를 맺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 CEO를 스승으로 모시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3학년 최호선(21) 씨는 건설회사인 삼대양개발 정장율 회장의 멘티. 최 씨는 “건설업뿐만 아니라 헤드헌터, 컨설턴트, 교수 등 여러 가지 직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며 “무엇보다 진로 결정에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학생으로서 회사의 경영전략회의에 참가하는 등 경영자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최원종(25) 씨는 얼마 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캐피탈호텔에서 열린 태준제약의 월례전략회의에 참석했다. 한 사안에 대해 임원끼리 공박하는 모습이나 이태영 회장이 화를 내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그는 “교과서의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야전 전략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2학년 변익주(20) 씨는 ㈜선진 박성수 회장의 권유로 겨울방학 때 2주일 동안 이 회사 천안 공장에서 일을 했다.

변 씨는 “평소 공장 일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8월에는 중국 공장에서도 인턴을 해보기로 했다”며 “앞으로 나는 공장 노동자보다는 경영자에 가까운 일을 할 텐데 지금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신문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한 기업인들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누구보다 부지런해야만 성공할 수 있구나’ 하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는 게 멘티들의 공통된 답변. 대부분 CEO들은 젊었을 때는 잠을 설쳐가며 일했고, 지금도 오전 5∼6시면 하루를 연다.

○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와 이견

CEO들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 특히 올바른 기업관, 인생관, 국가관은 CEO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주제. 이 모든 것들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될까?

동국산업 정 사장은 ‘나눔의 경영’을 모토로 삼고 있으며 홍 씨를 만나서도 줄곧 이 이야기를 했다. 홍 씨는 “좋은 이야기도 좋지만 그런 이야기보다 실생활에서 더 큰 감명을 받는다”고 했다.

홍 씨는 정 사장이 오전 6시에 출근해 3시간가량 정보를 얻기 위해 조간신문을 직접 스크랩하는 것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삼대양개발 정 회장이 최 씨를 만나 처음 한 질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고, 최 씨의 대답은 “독재자”였다. 정 회장은 개발시대 한국정부와 기업인의 역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고 했다.

멘티 경험을 지닌 학생들은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엄청 고생하면서도 푸대접 받는 풍토가 잘못됐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점은 멘터링에 참가한 기업인들이 ‘좌파 성향이 되기 쉬운’ 대학생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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