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전경련 등돌린 까닭은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09분


《1999년 1월 6일 오후 당시 강유식(姜庾植·현 ㈜LG 부회장) LG그룹 구조조정본부 사장은 서울 여의도 LG 트윈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LG는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날 구본무(具本茂·사진)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나온 뒤의 ‘빅딜(사업 맞교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LG그룹은 LG반도체를 2조5600억 원에 고(故)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이끌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에 넘겼다. ㈜LG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량회사를 대북사업을 하던 현대에 타의에 의해 넘긴 셈이었다”고 회고했다. 구 회장은 그날 저녁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정영의(鄭永儀·LG경제연구원 회장) 이헌조(李憲祖·LG전자 고문) 이문호(李文浩·LG인화원 원장) 씨 등 그룹 원로들과 함께 통음(痛飮)하면서 반도체사업 포기에 대한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말까지 했다.》

구 회장의 ‘분노’는 전국경제인연합회로도 향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구 회장은 당시 정권 실세들과 함께 빅딜에 깊이 간여한 전경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면서 “반도체 포기 결정을 내리던 날 ‘내가 LG 회장으로 있는 한 전경련에는 가지 않겠다’고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경련 회장단의 일원인 구 회장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6년 5개월이 넘도록 전경련 회의에 일절 참석하지 않고 있다. 2002년 6월 서울 근교 골프장으로 전경련 회장단을 초청해 한 차례 골프 모임은 가졌지만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반도체 포기 과정에서 맺힌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6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 회의 후 만찬에 이해찬(李海瓚) 총리가 참석해 처음으로 전경련회장단을 만나는 자리여서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회장도 오랜만에 참석했지만 구 회장은 끝내 불참했다.

여기다 삼성그룹 출신인 현명관(玄明官)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전경련에 있을 때 전체 재계보다는 삼성 측 시각을 많이 반영했다는 판단도 구 회장이 전경련의 역할에 더욱 회의감을 갖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구 회장의 ‘전경련 외면’에 대해 전경련은 당혹스러워한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강신호(姜信浩) 전경련 회장이 모임에서 우연히 구 회장을 만나 ‘언제 한번 회장단을 초청하시죠’라고 말해도 구 회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옆에서 보기에 무안할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조건호(趙健鎬) 전경련 부회장은 조만간 구 회장을 직접 찾아가 전경련 모임에 나와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할 계획이다.

LG그룹은 전경련의 역할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LG는 최근 전경련이 지금과 같은 ‘로비단체’에서 벗어나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처럼 정책연구기능을 강화하고 회장단 모임은 친목 차원에서 따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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