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지금보다 10달러 더 뛰면…정부, 단계적 대응책 마련

  • 입력 2005년 6월 28일 03시 03분


1, 2개월 안에 국제유가가 현재보다 배럴당 10달러 이상 오르면 가로등과 광고간판 등 야간 옥외 조명기구 사용 시간이 강제 단축될 전망이다.

그 후에도 유가 급등세가 멈추지 않으면 승용차 10부제가 실시되고 유흥업소, 야간 골프연습장 등의 영업시간도 단축된다.

국제유가가 연일 급등하자 산업자원부가 이런 내용의 고유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산자부는 조만간 최종안을 확정해 30일 이해찬(李海瓚) 총리 주재로 열리는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정부는 국제 유가에 따른 상황을 정상-관심-주의-경계 등 4단계로 나누고 이에 따라 단계별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는 주의 단계.

산자부 관계자는 “유가가 1, 2개월 내에 두 자릿수 이상 크게 뛰면 경계 단계로 넘어가 다양한 대책이 시행될 수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옥외 조명이나 가로등 같은 야간 조명기구 사용을 단축하고 건물의 승강기 사용을 일부 제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다음 단계로는 승용차 10부제 강제 시행과 야간 에너지 다(多)소비 업종에 대한 업무시간 단축 등이 포함돼 있다.

업무시간 강제 단축은 초기에 유흥 업종에서 시작해 야간골프연습장, 찜질방, 대형 할인매장 등 생활 관련 업종으로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에너지 사용은 크게 산업, 수송, 생활 및 상업으로 나뉘는데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부문은 결국 수송과 생활 및 상업 부문밖에 없다는 게 산자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휘발유 관련 세금을 낮춰 가격을 인하해주는 등의 가격 개입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유가가 단기적 급등이 아닌 올해 초부터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은 고유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수급 불일치라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 따라서 정부가 섣불리 가격에 손을 댔다가는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처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충격요법’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재택근무를 활성화하는 등의 방안도 관련 부처와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한편 산자부는 국제 원유가격과 수요공급 상황, 비축유의 양 등 18개 변수를 종합한 일종의 조기경보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기름값 뛴다고 난린데 소비자엔 강건너 불?

“기름값이 오르면 ‘또 오르는 모양이지’라고 생각하죠.”

롯데칠성 마케팅실의 문효식(文孝植) 과장.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서 서울 강남구 신사동까지 승용차로 출퇴근하지만 아직 유가 급등을 피부로 못 느낀다.

“담뱃값은 한번에 팍팍 오르기 때문에 민감하지만 휘발유값은 찔끔찔끔 오르잖아요.”

국제유가는 연일 급등하지만 문 과장처럼 이를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유가 상승을 소비자가 직접 느낄 수 있는 휘발유값과 항공료의 인상폭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가장 많이 들여오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올해 1월 3일 배럴당 34.26달러에서 6월 24일 사상 최고가인 53.26달러로 19달러(55%) 올랐다.

하지만 국내 주유소의 기름값은 SK㈜를 기준으로 할 때 1월 1일 L당 휘발유 1266원, 경유 927원에서 6월 23일에는 각각 1356원과 1056원으로 올랐다. 휘발유는 90원(7%), 경유는 129원(14%) 올랐을 뿐이다.

이는 휘발유에 붙는 세금이 소비자가격의 약 64%를 차지하는 가격구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크게 뛰어도 휘발유값은 그만큼 오르지 않는다. 정유회사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여론을 감안해 인상폭을 조절하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항공사들은 7월부터 모든 국제노선에서 국제유가 상승분을 요금에 반영하는 ‘유류 할증료’를 받지만 최소 15달러(단거리)에서 최대 30달러(장거리)로 큰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달러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17% 오른다. 장기적으로는 유가가 오르면 각종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뛰고 기업의 생산원가도 높아져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무조건 아껴 써야 하는 것이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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