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운 오리새끼
원료개발팀은 분석기기나 실험장비 구입 신청을 하면 늘 퇴짜를 맞았다. 비싼 시약을 신청했다가 야단맞은 일도 여러 차례. 팀 해체 설까지 돌면서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시 대리였던 최 부장이 보다 못해 코큐텐 개발 프로젝트 팀장을 맡겠다고 나섰다.
최 부장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약품을 개발한다는 회사 방침에 꼭 들어맞는 물질”이라며 윤재승(尹在勝) 사장을 붙들고 설득했다.
때마침 해외마케팅 담당자가 ‘코큐텐은 해외에서 뜨는 상품’이라고 보고해와 개발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 연구 또 연구
최 부장은 4명의 팀원을 구성해 2002년 4월부터 연구에 들어갔다. 휴일은 거의 없었다. 다음날 오전 3, 4시까지 연구소(경기 용인시)와 공장(화성시)에서 살았다.
“중간 단계에서 실패해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수십 번 반복했습니다.”(김태이 연구원)
한겨울 난방이 되지 않은 공장 휴게실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자면서 모두 독감을 달고 살았다.
2002년 12월 마침내 첫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25kg이 생산돼야 할 코큐텐이 0.5kg밖에 나오지 않았다.
“털썩 주저앉고 싶었어요. 모두 공장 근처에 있는 호수에 빠져죽자고 했어요.”(이한국 연구원)
만삭이 된 최 부장은 불편한 몸으로 팀을 이끌다가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 백조가 되다
최 부장은 출산 후 1개월 반 만에 출근해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벼랑 끝에서 손가락 하나로 버티는 심정이었어요. 후속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연구 과정을 되짚어가며 실패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에 몰두했다.
2003년 12월 31일 오전 1시. 마침내 코큐텐 100kg이 생산됐다.
대웅제약은 코큐텐으로 지난해 100억 원, 올해 400억 원어치의 수출계약을 했다. 지난해 순이익은 118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63%나 껑충 뛰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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