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 기획2부-성취와 도전]독립동기들 성적표

  • 입력 2005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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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 1960년부터 43년간 연평균 .45% 성장,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나라,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를 모두 개최한 나라….

한국이 광복을 맞은 1945년을 전후해 식민통치나 장기점령에서벗어난 ‘독립 동기국’들은 많다. 하지만 이후 60년 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사회적 성과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다.

한국의 ‘독립 동기국’은 전쟁 중 일본군이 점령했던 동남아시아, 독일이 장악했던 동유럽,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치하에 있던 중동지역에 집중돼 있다.

이들 중 많은 나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도 사회주의 계획경제나 정쟁, 내전의 늪에 빠져 경제 도약의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그나마 한국과 ‘성적표’를 견줄 만한 ‘동기생’은 대만 정도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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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한국도 기존의 제조업, 수출산업 위주의 성장전략이 벽에 부닥쳤다는 우려가 나온다.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 문제’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최빈국’에서 출발해 60년 만에 선진국 진입을 노리는 한국이 ‘최고 우등생’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인도▽

1947년 8월 영국에서 독립한 뒤 소련식 사회주의 모델을 채택했다. 초기에는 국가 주도형 통제경제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196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1%.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은행 국유화와 대기업 통제로 경제가 활력을 잃어 연평균 성장률이 3.1%로 떨어졌다.

경제 회생은 1980년 집권한 인디라 간디 총리에서 시작됐다. 민영화와 식량 자급을 위한 ‘녹색혁명’,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펼쳤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걸쳐 정보기술(IT)의 빠른 발달과 외국자본 유치로 2003년에는 8.6%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GDP(6860억 달러) 규모가 세계 10위에 올랐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 60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대만▽

50여 년간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다 1946년 12월 독립했다. 정치적 안정과 막대한 화교 자본의 힘으로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을 추진해 왔다. 한국과 달리 탄탄한 중소기업을 육성한 것도효과를 봤다.

1990년대 들어서는 반도체 컴퓨터 통신 등 정보기술 산업을 육성해 기술집약 산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를 보이며 성장세가 둔화됐다. 중소기업들이 중국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던 것. 이 때문에 2003년 1인당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한국에 추월당했고 올해도 저성장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

1946년 7월 독립국가가 됐다. 1960년대에는 한국 학생들이 유학할 정도로 아시아의 부국으로 성장했다.

1965년 정권을 잡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개발독재’ 방식의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집권층의 부패와 사회혼란 때문에 1980년대 연평균 성장률은 1.8%대로 낮아졌다.

이후 코라손 아키노,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경제개혁을 추진했지만 재정적자와 부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60년 61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82년 1011달러 이후 줄곧 떨어졌으며 20년 뒤인 2002년에야 1000달러를 회복했다.

▽폴란드▽

1945년 좌우합작 정부가 수립됐으나 소련의 압력으로 1948년 폴란드노동자당(PPR)이 정권을 장악해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1970년대에 서방국가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때문에 남은 것은 막대한 외채뿐이었다. 1989년 선거에서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승리해 비(非)공산당 주도의 연립정권이 출범했고 시장경제로 진입했다.

2000년 이후 유로화 강세, 수출 활성화 등으로 경제가 활력을 찾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을 겨냥한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 지난해 성장률은 6%대로 올랐다.

▽체코·슬로바키아▽

제2차 세계대전 종식과 함께 독일에서 벗어났지만 옛 소련의 위성국가로 편입됐다. 기계공업이 발달했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의 한계로 성장이 어려웠다.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비공산계가 주도하는 민주정부가 탄생했으나 1993년 인종문제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다.

시장경제 체제 도입 이후 1990년대 4991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2003년 5865달러로, 슬로바키아도 같은 기간 3291달러에서 4235달러로 늘었다.

▽인도네시아▽

1945년 8월 독립했다.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을 지지기반으로 했던 아흐메드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폈으나 과다한 재정지출과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68년 취임한 2대 수하르토 대통령은 사회주의의 실패를 거울삼아 1990년대 초까지 예산 및 재정정책의 균형을 추구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평균 7.9%, 1980년대 6.4%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최근에야 회복되는 추세다.

▽레바논▽

1943년 프랑스에서 독립했다. 초기 정부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기독교계의 3대 세력 연합 정권이었다.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지만 국가통제가 심하고 소수 기업이 경제를 장악한 ‘독점 자본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1950년대까지 ‘지중해의 보석’이라고 불릴 만큼 발달한 무역항이었지만 계속된 내전으로 경제는 피폐해졌다.

1991년 이후 ‘호라이즌 2000’이라는 재건정책으로 회복기미를 보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2.3%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요르단▽

1946년 영국에서 독립해 입헌 군주제를 채택했다. 후세인 이븐 탈랄 국왕은 1999년 타계할 때까지 50년간 재임하면서 ‘중동 평화의 중재자’로 명성을 얻으며 정치적 안정을 토대로 경제도 발전시켰다. 그러나 해외부채 증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1992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침에 따라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1인당 소득은 2003년 현재 1801달러로 1980년대 중반보다 낮다. 2001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뒤 수출이 늘고 있으며 오일달러 유입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한국의 기적' 원동력은▼

요즘 많은 국민이 불황의 그림자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한국 경제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광복 이후 60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달성한 경제적 성과는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비슷한 시기에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이런 사실은 더욱 뚜렷해진다. 한국이 다른 동기생들보다 빠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정치 안정은 냉전적 국제질서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힘입은 것이 사실이지만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있는 수십 개 나라는 독립 이후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정치 종교 인종적 이유로 내전에 휩싸였고 이런 불안은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이 선택한 경제발전 전략이 세계사의 큰 흐름과 부합했다는 것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60년간 세계 역사는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자본주의 이념의 우월성, 그리고 폐쇄적 경제체제에 대한 개방적 경제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했다.

한국은 경제개발 초기부터 자본주의적 길과 개방의 길을 선택한 반면 다른 많은 독립 국가는 사회주의적 길, 폐쇄의 길을 선택했다.

냉전체제 아래서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사회주의, 혹은 ‘국가통제적 경제체제’를 선택했다. 또 많은 나라가 자립적 발전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수출 지향적 공업화 대신 수입 대체적 공업화의 길을 선택했다.

이런 길을 택했던 나라들이 개방적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부터였다. 다른 나라들이 독립 이후 30∼40여 년간 ‘잘못된 길’을 갈 때 한국은 일찍부터 올바른 길에 들어섰던 것이 지금과 같은 큰 격차를 낳은 것이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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