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자시장을 독식한 바이오 기업
연초 산성피앤씨를 선두로 촉발된 바이오기업 열풍은 최근 그 강도가 더욱 세지고 있다. 7월 이후 코스닥 등록기업 가운데 바이오 분야에 새로 출자한 회사는 18개나 된다.
이들 기업 대부분이 급등한 주가를 바탕으로 유상증자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바이오 관련 기업의 유상증자는 20건 이상이다. 모은 자금만 1000억 원이 넘는다.
이들 중에는 비교적 오래전부터 바이오 분야에 진출한 기업도 있다. 하지만 바이오 열풍이 시작된 올해 4월 이후 10억 원 남짓한 돈을 소규모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고 주가가 급등하자 증자에 나선 회사도 적지 않다.
씨오텍 동진에코텍 서울일렉트론 에이스일렉트로닉스 등은 4, 5월 바이오 회사에 10억 원 안팎의 돈을 투자한 뒤 5∼7월 일제히 증자에 나섰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바이오 분야에 5억 원만 투자해도 시가총액이 50억 원씩 뛰는 기형적 현상이 빚은 촌극”이라며 “애초 바이오 분야 진출의 목적이 주가를 띄워 증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의 증자는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지난달 초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한 HS홀딩스에는 무려 2030억 원의 자금이 몰려 33.55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의 재판인가
이들 기업이 이처럼 높은 주가에 증자할 만한 자격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실적이 형편없다. 바이오 테마의 선두주자 가운데 하나인 씨오텍은 1분기(1∼3월) 9억 원가량의 적자를 냈다. 서울일렉트론과 티니아텍, 동진에코텍 등도 1분기와 상반기(1∼6월) 모두 적자를 낸 기업이다. ‘바이오 진출’이라는 재료만 아니었으면 증자 시도조차 못했을 기업이 수두룩하다.
해당 기업들은 “바이오 분야의 특성상 투자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기업은 바이오 기업의 주식을 샀을 뿐 바이오 관련 사업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필요한 곳은 출자한 바이오 기업이지 모(母)회사가 아닌데 정작 증자는 모회사가 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0년 ‘거품 주가’를 바탕으로 자금만 끌어 모은 뒤 수년 동안 자금을 까먹으며 허송세월을 한 IT 관련 기업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화증권 최현재 연구원은 “바이오 진출 기업이 증자 시장을 독식하면 정말 돈이 필요한 다른 기업의 증자가 어려울 수도 있다”며 “건전한 주식자본주의가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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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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