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미국의 무역수지는 여전히 적자 상태다. 원유 수급 불안도 국제적 협의로 풀어야 할 과제다. ‘제2의 플라자 합의’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회의 참가 후보국으로 한국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이 허탈감….
전문가의 견해를 종합해 보니 기존 선진 7개국(G7) 모임과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4개국을 포함한 ‘G11’ 회의가 예상된다. 한국은 세계 10, 11위 경제 대국이라 우쭐하고 있지만 미래의 세계 경제를 논하는 자리에 ‘왕따’ 당하는 셈이다.
“한국이 내부 갈등과 과거 문제 집착으로 국력을 소모하는 바람에 경쟁국들이 추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강대국에 대해 “할 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지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호언(豪言)도 국력이 뒷받침돼야 먹혀들지 않겠는가.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등 외국 기관이 내놓은 ‘2020년 신경제질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미래 경제력은 불투명하다. 15년 뒤 한국은 브라질 러시아 캐나다 멕시코 네덜란드 등과 함께 10∼15위 자리를 다툴 전망이란다.
미래학 분야를 천착한 하인호 박사는 최근 펴낸 ‘한국인의 선택적 미래 2020’이란 저서에서 남북한 통일이 원만하게 이뤄지고 경제, 사회 시스템과 과학 기술 수준이 선진화되면 2030년엔 한국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8∼10위를 겨룰 것이라고 예측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돌발 사건을 일컫는 ‘와일드 카드’가 한반도 안팎에서 생길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나락(奈落)으로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와일드 카드로는 동북아 전쟁, 자연 대재앙, 갑작스러운 미군 철수, 중국 경제의 호황과 위기, 제조업 공동화 등이 꼽혔다.
한국에서 미래 전망은 흔히 역학(易學)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내다보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하는 미래 예측 분야가 있다. ‘2010년엔 의대 졸업생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 ‘한국은 2050년에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된다’ 등은 예언이 아니라 추세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명제이다. 적절한 대책을 세워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올해 7월 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미래회의에 참가한 한국인들은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정부 차원의 미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내놓을 자료가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통일 한국에 대한 전망도 제대로 된 것이 없을 정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간 차원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9월에 발족한 3개 민간단체는 설립 목표가 미래지향적이어서 활동이 기대된다. 시장경제 싱크탱크를 자임한 ‘한국선진화포럼’, 선진국이 되기 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선진화 정책운동’, 지식경영을 확산시킨다는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가 이들 단체다.
‘제2의 플라자 회의’에서 한국이 소외된 점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집권층의 좁은 식견을 통탄하노니….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