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비자금이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정부당국은 왜 조사에 소극적이었는지, ‘김윤규 비자금’을 후원금으로 받은 정치인이 누군지 등 여전히 밝혀져야 할 의혹이 많다.
이에 따라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자금 어디로 흘러갔나
내부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 부회장이 남북협력기금과 회사 자금에서 빼돌린 ‘금강산 비자금’ 사용액 76만2000달러 가운데 20만 달러의 행방은 밝혀져 있다. ‘사생활 관계자’인 20대 여성이 운영하는 서울 양천구 목동 S빌딩의 D커피전문점 보증금으로 쓰였다고 감사보고서는 판단했다.
하지만 금강산 비자금 중 나머지 56만2000달러는 북한 현지에서 인출됐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 부회장이 북한 측에 대한 로비자금이나 기타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흘러나온다. 감사원 특감이나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철저히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또 금강산 비자금의 65%를 넘는 50만 달러에 이르는 남북협력기금(보고서에서는 남북경협기금으로 표현) 관련 금액이 어떤 방식으로 조성됐는지도 빼놓을 수 없다.
금강산 비자금과 별도로 김 부회장이 현대아산의 국내 협력업체를 통해 조성한 1억2200만 원의 ‘본사 비자금’의 행방도 문제가 될 전망이다.
감사보고서는 이 돈이 “부의금, 정치인 후원금 등으로 집행됐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김 부회장이 부정하게 만들어진 돈을 어떤 정치인에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주었는지가 초점이다.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박탈당한 뒤에도 지나치게 당당하게 행동하면서 대표이사 복귀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당국은 왜 조사에 소극적일까
통일부 감사원 검찰 등 정부 당국이 ‘김윤규 비리’와 관련해 보여 온 석연찮은 모습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정부당국은 김 부회장의 비리가 8월 초 본보의 특종보도로 알려지고 현대그룹이 이를 인정해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는데도 “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김 부회장에 대한 조사나 수사를 전혀 벌이지 않는 등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특히 남북협력기금의 총체적 관리책임이 있는 통일부의 행태는 의문을 낳고 있다.
통일부는 1차 피해자인 현대 측 감사보고서에 남북협력기금 유용이 명기됐는데도 지난달 30일 “남북협력기금은 한국관광공사, 한국수출입은행, 조달청 등을 통해 지원됐으며 현대아산에 직접 지원한 바 없으므로 남북협력기금 유용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또 통일부 홍보관리관은 본보 기자들에게 전화로 “언론중재위원회 회부와 함께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은행 등을 통해 기업에 지원한 공적자금을 둘러싼 물의가 생길 때 정부가 공적자금 유용의 관리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것처럼 남북협력기금도 당연히 정부의 주무부처가 기금 운용과 관리의 최종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 비리 시인한 현대 ‘곤혹’
현대그룹은 본보가 1일 남북협력기금 유용액과 김 부회장의 비리 금액 총액 등 보고서 세부 내용도 사본 사진과 함께 추가로 공개하자 보도 내용을 모두 시인했다. 또 앞으로 관련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룹 측은 “내부감사 보고서에 김 부회장이 조성한 비자금 중 50만 달러가 남북경협관련 금액이라고 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달 30일 동아일보 보도가 나온 날 ‘남북협력기금 유용은 시스템상 어렵다’고 말한 것은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먼저 그렇게 밝혔기 때문에 기업으로서 상반된 입장 표명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현대그룹은 내부감사 보고서 공개에 따른 파장에 고심하면서도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한층 높이는 ‘보약(補藥)’으로 삼겠다는 분위기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일부 정부 당국자와 언론은 그룹에서 내부감사 보고서를 동아일보에 흘린 것처럼 오해해 곤혹스럽다”면서 “남북협력기금 유용처럼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큰 사안을 언론에 의도적으로 흘릴 기업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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