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 CB 싼값 배정은 업무상 배임” 1심 판결

  • 입력 2005년 10월 5일 03시 05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둘러싸고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기존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한 CB를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재용(在鎔·삼성전자 상무) 씨 등에게 싼값으로 배정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이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에버랜드 주식 편법 상속의 부당성을 사실상 인정한 것.

그러나 에버랜드의 CB 발행 자체를 무효화한 것은 아니어서 이 회장에게서 재용 씨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경영권 후계 구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은 이 회장 등 나머지 피고발인 31명이 업무상 배임에 공모했는지 등에 대해 추가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이혜광·李惠光)는 4일 에버랜드 CB를 재용 씨 등 4남매에게 싼값에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된 에버랜드 허태학(許泰鶴) 전 사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박노빈(朴魯斌·당시 상무) 사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제의 CB 가격을 특정할 수 없어 회사가 피해 본 금액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에 끼친 손해가 5억 원 이상일 경우 적용하는 특경가법 대신 형법의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에버랜드 CB를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가장한 뒤 이들이 인수를 포기하자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넘길 목적으로 재용 씨 등에게 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허 전 사장 등은 1996년 12월 주당 8만5000원인 에버랜드 CB 125만4700여 주에 대해 기존 주주들이 인수 권리를 포기하자 이사회 결의를 거쳐 이를 주당 7700원에 재용 씨 등에게 배정해 회사에 969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03년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형량이 너무 낮다며 곧바로 서울고법에 항소했다. 삼성그룹은 “변호사들과 상의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부장 정동민·鄭東敏)는 이날 삼성그룹 관계자들의 공모 여부를 밝히기 위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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