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초동 인근에 총면적 5000평 규모의 지하 5층, 지상 5층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사려던 L건설회사 관계자 A 씨는 열린우리당이 발의한 ‘기반시설부담금에 관한 법률안’을 검토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조율을 거친 이 법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300억 원의 사업비 중 최대 94억 원가량을 기반시설부담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A 씨는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차하면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뜻.
정부와 여당이 마련한 기반시설부담금제의 구체적 산정 방식이 알려지자 건설회사와 재건축 조합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내년부터 개발이익의 25%까지 부과하는 개발부담금 제도도 부활하는 만큼 ‘이중 부담’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연면적 4000여 평의 사무용 빌딩을 지으려던 B 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최대 54억 원가량의 기반시설부담금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직원의 보고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내야겠다”면서 일단 땅 매입 작업을 중단했다.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원이 부담금을 내야 한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는 가구당 2000만 원 안팎의 기반시설부담금을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건축 대상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영동차관아파트는 15평형을 소유했던 조합원이 32평형 아파트에 입주할 경우 1800만 원 정도의 부담금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성보아파트 윤영석(尹永錫) 조합장은 “아파트를 재건축하면서 전체 면적의 25%를 임대주택으로, 전체 대지의 5%를 도로 등의 용도로 내줘야 하는 상황에서 가구당 수천만 원의 부담금을 또 내라면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에 관련 법률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기반시설부담금 삭감 방침은 없다”고 밝혔다.
건설교통부 이재영(李宰榮) 국토균형발전본부장은 “일부 부유층의 예상됐던 반발”이라며 “무분별한 도심 개발을 막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법안대로 기반시설부담금이 부과되면 건설업체들이 이를 원가에 반영해 아파트 분양가만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기반시설부담금:
건축물을 지은 뒤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에 대한 비용을 수익자가 내도록 하는 제도. 200m²(60평) 이상 모든 신규 주택, 상가, 사무용 빌딩, 재건축 재개발 등의 신·증축 행위에 적용될 예정이다. 단, 정부와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임대주택단지나 택지개발사업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