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에 들어 갔다고 해서 모두 CEO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최종 관문은 인사추천위원회. 하지만 구 회장의 사전 검증을 받아야 한다. 구 회장은 예정에 없던 골프나 해외 출장을 통해 이들을 시험대에 올린다.
○ 대리나 과장급에서 CEO 후보군 만들어
LG에선 30대 전반의 직원들부터 ‘CEO 풀’이 가동된다.
각 회사에 ‘Young HPI(High Potential Individual·사장후보군)’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초급 관리직인 대리나 과장 때부터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회사가 지원한다. 30대 후반과 40대 전반인 부·차장급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Leader HPI로 불리는 이들은 경영자로서의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다양한 부서 경험과 강도 높은 훈련을 위해 위기와 시련에도 노출시킨다. 새로운 사업이나 적자사업의 리더 경험을 하거나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의 리더, 해외 법인장이나 자회사 사장을 맡을 수도 있다.
이 리스트에서 임원급 발탁이 이뤄지고 다시 40대 후반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사장 후계자 명단이 마련된다.
CEO 후보군에 들어간 임직원은 교육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다. 회계 관련 자격증 취득은 물론 특정 과제를 놓고 선진기업이나 해외연구소에 파견해 문제해결 능력을 쌓도록 배려한다. 상사에게서 혹독한 OJT(On the Job Training)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LG의 한 간부는 “Leader HPI는 계열회사 CEO나 각 사업 부문의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서 “여기서 너무 긴장하거나 발표를 잘 못해 탈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 골프 및 해외 출장으로 됨됨이 본다
LG그룹 계열사 사장은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쳐 이사회에서 선임된다. 지주회사로 개편된 뒤 이런 추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구 회장은 CEO가 될 만한 임원을 불러 ‘본인도 모르게’ 테스트한다.
경기 광주시의 곤지암 골프장에서 주말 골프를 하는 구 회장은 주로 계열사 CEO 및 국내외 협력업체 사장들과 라운딩을 한다. 구 회장은 여기에 CEO 후보자들을 멤버로 슬쩍 끼워 넣는다.
핸디캡 9로 80대 초반을 치는 구 회장은 동반자가 골프를 얼마나 잘 치느냐를 보지 않는다. 이보다 골프 매너를 중시하고 특히 위기에 빠졌을 때 어떻게 헤쳐 나오는지, 성의 없이 대충대충 치지 않는지를 꼼꼼히 살펴본다고 한다.
예컨대 티샷에서 오비(OB)를 날렸을 때 표정이나 반응 등을 살피고, 벙커에 공이 들어갔을 때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를 유심히 본다고 한다. 또 그린에서 ‘스리 퍼트’를 해 타수를 까먹었을 때 반응을 통해 경영자로 키울 수 있는지 체크하기도 한다.
해외 출장도 시험대다. LG 관계자는 “출장을 가면 CEO 후보자들의 성품과 자질을 더 자연스레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회장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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