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增資) 시장은 ‘머니 게임’이 된 지 오래입니다. 장기 비전을 토대로 투자를 유치하는 건 꿈입니다. ‘재료’를 타고 주가가 급등하지 않으면 증자는 어려워요.”(코스닥 등록기업 B사 사장)
돈줄이 막혔다. 한국 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 기업들이 “돈을 구하기 쉽지 않다”며 아우성이다.
본보가 코스닥 등록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7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은행을 통한 대출이 원활하지 않다’는 대답(55명·70.5%)이 ‘원활하다’(10명·12.8%)를 압도했다.
증시를 통한 자금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는 답변(40명·51.3%)이 ‘원활하다’는 대답(26명·33.3%)보다 훨씬 많았다.
응답자의 대부분인 75명은 대기업으로만 돈이 몰리는 ‘자금 양극화’ 현상이 앞으로 지속되거나(52.6%) 더 심해질 것(43.6%)이라고 내다봤다.
증시가 활황이고 금리도 낮은 상태에서 중견 기업들이 자금난을 호소하는 것은 한국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무 상태와 사업 구조에 대한 검증이 어느 정도 끝난 코스닥 등록기업조차 정상적인 금융시스템을 통해 돈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한 코스닥 등록기업 CEO는 “증시가 활황이라지만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CEO는 “우리 같은 중견 기업이 이 지경인데 소(小)기업은 어떨지 걱정된다”고 했다.
정부의 벤처기업 활성화 정책에 대한 불신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활성화 정책에 대해 35명(44.9%)은 ‘별로 효과가 없다’, 23명(29.5%)은 ‘전혀 효과가 없다’고 대답했다. ‘큰 효과가 있다’와 ‘효과가 있다’는 대답은 1명(1.3%)과 11명(14.1%)에 그쳤다.
한 CEO는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든다는 데 솔직히 헛구호로 들린다”며 “중견 기업이 ‘주류 금융’에서 소외되고 있는데 무슨 수로 금융 강국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동부증권 장영수(張寧洙) 연구원은 “금융시장의 호황이 기업 경영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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