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보험금 299억원 미스터리

  • 입력 2005년 11월 14일 15시 14분


화재가 발생했던 LG전자 가산사업장.
화재가 발생했던 LG전자 가산사업장.
LG전자(옛 LG정보통신)가 보험사기 의혹에 휘말렸다. 2005년 2월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렸음에도 의혹을 제기하는 각종 증언과 제보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8년 2월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LG전자 휴대전화 생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때 리콜 또는 생산 중이던 휴대전화 등을 화재현장으로 옮겨 토치램프(torch lamp·화염방사기의 일종)로 태우거나 그을려 피해액을 부풀렸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 LG전자는 이 화재와 관련해 LG화재로부터 299억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하지만 현장 감식에 나섰던 서울 구로소방서 측이 집계한 당시 피해액은 490만원. 무려 6000배나 차이가 난다.

이 같은 의혹은 당시 현장에서 토치램프 작업을 지휘했거나 지켜보았다고 주장하는 전직 LG전자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K 전 생산과장과 그의 부하직원이었던 N모, P모 씨 등 6~7명이 주인공들. 이들은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내용을 비디오테이프에 담거나 진술서로 작성해 대한손해보험협회(손보협)와 금융감독원(금감원)에 제보하기도 했다.

▼“10여평 소실 30여평 그을린 화재”

‘주간동아’가 입수한 전직 직원 4인의 증언 비디오테이프 및 진술서에는 △불량품 또는 반품된 휴대전화 박스를 옮기는 과정 △토치램프로 휴대전화를 불태우거나 그을리는 장면 △화재로 위장하기 위해 소금 탄 물을 뿌리는 장면 등에 대한 구체적 증언들이 나온다. 이 자료를 입수한 손보협이 조사에 착수하자 LG전자는 제보자들에게 1억원을 전달해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1억원을 받은 제보자들은 2005년 초 LG전자 측에 100억원을 추가로 요구(LG전자 법무팀 주장)하다, LG전자가 공갈혐의로 고소함으로써 구속돼 법원에서 유죄(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한편 검찰은 LG전자 화재사건과 관련 ‘최소 75억원의 보험금 편취 의혹이 제기된다’는 금감원의 수사 의뢰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된 듯싶었는데 제보자들이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

사건은 IMF 한파가 밀어닥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전자 서울 금천구 가산사업장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설 연휴가 끝난 2월1일. 전기 합선에 의한 화재는 공장 내부를 태우고 18분 만에 진화됐다. 당시 화재진압에 나섰던 구로소방서가 작성한 ‘화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불은 지상 5층 지하 3층(사무동 7000평)의 건물 가운데 1층에서 발화했다. 현장 조사를 했던 구로소방서 화재조사실 조사관 정찬경 소방장은 9월 말 전화통화에서 “1층 500여평 중 실내 10여평이 소실됐고 30여평이 그을렸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큰 불은 아니었다. 큰 불은 화재진압에 보통 3~4시간이 걸리는데 그 불은 18분 만에 진화됐다. 책상과 컴퓨터, 휴대전화, 플라스틱 류가 탔다. 특히 항온·항습기가 가장 심하게 탔다. 책상 위에서 휴대전화 조립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서너 개씩 있더라.”

정 소방장은 경력 16년차의 중견 소방관으로 화재현장을 돌며 피해액을 조사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정 소방장은 이날 화재 피해액을 490만원으로 잠정 집계했다. 현장 지휘관도 정 소방장이 작성한 보고서를 정당하다고 판단해 결재를 했다. 그러나 얼마 후 LG화재는 이 화재에 대한 보험금으로 LG전자에 299억원을 지급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구로소방서 측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 소방장의 설명이다.

“전자제품은 연기나 물 등에 노출될 경우 사용이 불가능해 피해액은 내가 산정한 것보다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10배도 100배도 아니고, 6000배라니…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나는 업무 소홀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 화재사고 피해액이 299억원이 되려면 남대문시장이 다 타버려야 가능할 금액일 것이다.”

계속되는 정 소방장의 증언이다.

“검찰에서 손해사정인 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자료에는 내가 현장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더라. 피해 물품으로 박스가 있고 그 안에 휴대전화들이 다량으로 있었다고 돼 있는데, 내가 본 화재현장 주변에는 박스가 없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박스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타지 않았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휴대전화 부품과 제조하는 과정에 있는 재공품(在工品), 반제품 등에 대한 손실금액이 265억원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현장의 조사 피해액을 산정했던 손해사정인 C 씨도 “화재현장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하며 “화재 당일(2월1일) 나는 현장에 도착해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현장 조작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조사 당시 C 씨가 제출한 사진에는 2월2일자부터 20일까지 사진만 있을 뿐 당일 사진은 없었다. 이에 대해 C 씨는 “오래된 사진이라 당일 사진은 사무실에서 폐기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화재사건은 보험업계에서도 화제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다 엉뚱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2002년 12월, 전 LG정보통신 기산사업장 작업조장이었던 K 전 과장이 “LG전자가 화재사고를 이용해 수백억 원대의 보험사기를 쳤다”며 손보협에 제보를 한 것. 손보협은 보험사기 사건을 신고할 경우 거액을 지급하는 포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K 전 과장이 이를 알고 신고한 것이다.

▼ LG “재공품과 반제품 피해”

제보를 받은 손보협은 바짝 긴장했다. 사실이라면 국내 최대의 보험사기 사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무진들은 당시 회장인 A 씨에게 이 사안의 심각성을 보고했는데, 현재 손보협 상무로 있는 안병재 씨는 9월 말 전화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3년 1차 보고서에는 제보자의 자술서가 첨부됐는데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보험사기 의혹이 강하다는 판단을 했다. 직속상관에게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한 뒤 A 회장에게 보고했다.”

손보협은 제보자와 접촉해 이들의 진술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만들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조사가 구체화되자 손보협의 태도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주도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던 안 상무가 부산으로 발령이 난 것. 이후 손보협 내부에서는 A 회장이 LG전자 보험사기 의혹과 관련해 ‘사내 보안’을 요구하며 조사 내용을 직보하도록 지시했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A 회장의 지시를 받아 보험사기 의혹 사건을 조사했던 B 씨가 손보협 내부 감사에서 털어놓은 내용이다.

“A 회장이 나를 부르더니 ‘이제부터 (LG전자 건은) 자신에게만 보고하라’고 했다. 그래서 조사 내용을 그에게만 보고했다.”

이에 대해 현재는 손보협을 떠난 A 회장은 다른 주장을 편다. 10월13일 취재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그는 “담당 직원에게 나에게만 보고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LG 측 인사들과 만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보협의 이해하기 힘든 일 처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손보협은 LG전자 측으로부터 1억원을 받아 K 전 과장에게 전달했다. K 전 과장의 증언이다.

“종로구청 인근 커피숍에서 B 씨와 함께 있다가 LG팀들과 통화를 끝낸 B 씨가 나를 데리고 로터리가 있는 도로변으로 데리고 갔다. 길가에 쏘나타가 한 대 있었는데 운전수가 LG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B 씨가 뒷좌석 문을 열고 A4용지를 담은 박스를 꺼내자 차는 그냥 출발했다. 마치 007 영화 같았다. 그 후 B 씨가 확인이나 해보자며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박스 안에 정확히 1000만원 뭉치 10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이를 내 계좌에 입금했다.”

▼손보협 제보자에 1억원 전달

K 전 과장은 당시 B 씨에게 “왜 보상금을 손보협이 아닌 LG가 주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이 질문에 B 씨는 “묻지 말고 그냥 받아라”고 답변했다. 원칙대로라면 보험사기를 신고하고 이 신고가 사실로 인정될 경우 손보협은 내부 규정에 따른 지급 절차를 밟아 포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때문에 안병재 상무는 “그 돈은 보상금과 전혀 관계없는 돈”이라고 잘라 말했다.

보험사기 의혹을 받고 있던 LG전자는 왜 제보자에게 1억원을 전달했을까. 이 의문은 손보협 직원이 내부 감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풀린다. 1억원을 전달하는 데 중개역을 맡았던 B 씨의 진술 내용이다.

“LG화재 임원들을 만났다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불이 난 것을 가지고 K 전 과장이 협박을 해왔는데 회사 이미지가 있어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LG화재 임원이 ‘K 전 과장이 포상금 때문에 제보를 했다. 이런 제보를 하면 포상금은 어느 정도까지 주느냐’고 묻기에 ‘보험사기액의 10% 정도를 주는데 최고 한도액이 1억원’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취재기자는 B 씨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접촉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LG전자의 법무팀은 10월 초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회사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1억원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손보협이 LG전자의 화재의혹 사건과 관련해 앞장섰던 부분은 또 있다. 제보자 K 전 과장에게 1억원을 건넨 B 씨는 돈을 건넨 직후 녹음기를 꺼내 제보를 취소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K 전 과장의 설명.

“1억원이 든 박스를 건넨 뒤 B 씨가 녹음기를 꺼내놓고 ‘내 제보가 잘못되었으니 1월7일부로 제보를 취소한다’는 요지로 발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녹음에 응했다.”

이 부분과 관련 손보협 안 상무의 전언은 의미심장하다.

“부산 근무를 마치고 올라와서 보니 LG전자 관련 서류와 제보 내용이 모두 사라졌다. 알고 보니 제보자가 제보를 취소했다고 하더라.”

제보자가 생각을 바꿨다고 제보 내용을 폐기해도 되는 것일까. 안 상무는 “그것은 손보협 역사상 최대의 오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LG전자의 보험사기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LG전자 화재사건은 정상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면 손보협에서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실무팀장 B 씨와 A 전 회장, 그리고 LG화재와 K 전 과장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손보협 A 전 회장은 10월21일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그 사건은 담당자가 별 문제 없다고 종결 처리했다”고 말했다.

LG전자가 손보협의 도움을 받아 제보자에게 1억원을 전달한 뒤 이 사건은 잠잠해졌다. 그런데 2004년 K 전 과장은 부하직원이었던 N 씨 등을 끌어들여 LG와 2차 거래를 시도했다. 손보협에 제보했던 비디오테이프와 진술서 등을 금감원에 전달하며 LG전자를 압박한 것.

손보협이 LG전자 보험사기 의혹과 관련해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것과 달리 금감원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와 관련 7월 금감원 보험조사실 강진순 검사역은 K 전 과장 사건을 다음과 같이 법정에서 증언했다.

“2004년 7월30일 몇몇 사람들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그들의 제보 내용은 현장에 없었다면 진술할 수 없다는 확신이 섰다. 소방서 조사와 보험사 보험지금 내역을 확인해보니 상당한 의혹이 일었다. 소방관이 당시 화재현장을 조사해 작성한 피해 내역에는 없는 물품이 보험금 지급 대상에 있었다. 보험사기 의혹이 높다고 판단했다. 자료상 최소 75억 이상의 보험금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그래서 대검으로 자료를 넘겨 수사를 요청했다.”

11월9일 강 검사역은 전화통화에서 다시 한번 이런 입장을 강조했다.

“제보 내용 중 화재현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던 물건을 현장으로 옮겼다는 진술 등에서 피해액을 부풀린 의혹이 있었다. 수사권은 없고 사안은 중대하니 하루라도 빨리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이 당시 금감원의 입장이었다.”

▼금감원, 보험금 편취 의혹 수사 요청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 김 모 검사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주간동아’는 금감원이 이첩한 보험금 편취 의혹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리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그는 8월 해외연수를 떠나고 없었다.

그런데 LG전자 측은 바로 이 시기 K 전 과장 등이 LG전자에 100억원을 요구했다며 이들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K 전 과장 등은 관련 기관에 자료를 넘겨놓고도 LG를 압박하는 이중플레이를 했다는 것. 공교롭게도 이 사건도 서울남부지검 김 검사가 맡게 되었다.

김 검사는 98년 화재 당시 현장에 있던 6명을 불러 조사했다. 그런데 이중 5명은 LG전자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1명은 LG그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K 전 과장이 거짓말을 한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LG전자에 근무하고 있거나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을 조사하면 이들이 회사에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의 증언 등을 근거로 K 전 과장과 N 씨를 공갈 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5월).

그런데 K 전 과장 등을 피고로 한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 간에 미묘한 갈등이 벌어졌다. 김 검사는 K 전 과장의 공갈 혐의와 관련 공소장에 “(LG전자가 화재현장을 조작 보험금을 과다청구했다는) 제보자의 주장은 허위”이며 “K 전 과장 등이 허위의 사실을 가지고 회사를 협박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재판장인 문모 판사는 7월5일 공판에서 “보험사기 사건이냐 아니냐는 재판의 핵심이 아닌데, 왜 검사는 피고인의 주장이 허위라고 강조하느냐. 그렇다면 재판이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보험사기 여부부터 확인해보자”라고 지적하며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그 후 김 검사는 ‘보험사기 사건이 없는 허위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라는 내용을 공소장에서 뺐다. 법정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K 전 과장의 설명이다.

“검찰이 보험금 지급에 의혹이 없다는 식으로 재판을 끌고 가려 하자 재판부가 그 부분을 파헤치자며 의욕을 보였다.”

재판부는 이 재판에서 K 전 과장이 돈을 요구했다는 부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유죄(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로써 K 전 과장 등의 공갈미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LG전자 측은 K 전 과장 등을 공갈을 한 ‘파렴치범’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들이 유죄 확정이 된 것은 돈을 요구한 것에 대한 법적인 심판일 뿐 보험사기 의혹에 대한 판단은 아니다. 이 점은 문 판사의 당시 법정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 판사의 발언이다.

“당시 수사기록을 보니 검찰이 금감원의 수사의뢰 사건을 무혐의로 처분한 것은 회사가 보험사기를 쳤다는 법적인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으로는 보험사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사건을 정리해보자. LG전자 측은 K 전 과장 등을 파렴치범이라고 했지만 1억원이란 거금을 주었다. 파렴치범에게 거액을 주는 이율배반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파렴치범이라면 LG전자 측은 1억원을 주기 전에 이들을 공갈 혐의로 고소해야 했던 것 아닐까.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기업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먼저 공갈 혐의로 고소하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K 전 과장의 행동에도 의문이 있다. 그는 LG전자를 압박해 1억원을 받아냈는데도 또다시 같은 수법으로 100억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두 번째 압박이 형사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인데, K 전 과장은 어떤 확신이 있었기에 두 번이나 도전을 한 것일까.

세 번째 의문은 소방서가 집계한 화재 피해액 490만원과 LG화재가 지급한 보험금 299억원 사이의 엄청난 간극이다. 왜 두 기관이 판단한 피해액은 6000여 배라는 엄청난 차이가 나야 할까. 그리고 손해사정인이 찍었다는 화재 발생 당일 사진은 왜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또 손보협은 왜 이 사건을 명쾌하게 처리하지 않았는가.

LG전자 측 고소로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은 K 전 과장과 N 씨는 현재 항소 중이다. 11월15일 4차 재판을 앞두고 있는 K 씨는 지금도 같은 말을 되뇐다.

“돈을 요구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렇지만 내 지휘에 따라 후취부(자신이 근무하던 부서) 직원 4~5명과 제품부 직원 4~5명이 토치램프 작업을 한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

이 사건은 사상 최대의 보험사기 사건일까, 아니면 제보자들의 공갈 사건일까. 보험사기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금감원의 추정처럼 보험사기 행위가 있었다면 이 사건은 아직 시효가 남아 있다. 반대로 제보자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이들은 가중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LG전자 화재사건을 둘러싼 보험사기 의혹, 그 진실을 알고 싶다.

김시관 주간동아 기자 sk21@donga.com

▼ LG전자 측 해명 - “보험금 편취 의혹 사실무근… 그들은 돈 노린 공갈범”

‘주간동아’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LG전자 보험사기 의혹을 보도하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객관과 주관을 오가는 의혹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간동아는 대립되는 양측의 팽팽한 주장 속으로 들어가기로 정했다. 3개월여 사건을 추적한 결과 내용 자체가 갖는 무게와 의혹이 다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허점도 있을 수 있다. 그 허점을 보강하기 위해 LG전자 측에 장문의 질문서를 보내 답변을 요구했다. 충분한 반론권을 주기 위한 주간동아의 요청에 LG 측 역시 장문의 답변서로 대응했다. 이 답변서에서 LG전자 측은 “화재현장의 조작 등을 통한 보험금 편취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리고 제보자들에 대해 “돈을 노린 공갈범들”이라고 말했다. K 전 과장에게 1억원을 전달한 것에 대해서도 “기업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LG전자 법무팀이 보낸 답변서를 요약한 것이다.

-구로소방서 조사반의 피해액과 보험금 수령액의 차이가 나는데.

“구로소방서 화재조사 보고서의 내용 중 ‘1층 500여평 중 실내 10여평이 소실됐고 30여평이 그을린 것’이라는 기재는 마치 1층 500여평 중 40여평만 화재 피해를 입은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을린 부분은 40여평일지 몰라도 1층 전체와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물품 전체가 화재로 인한 열과 연기, 그리고 화재진압 과정에서 살수된 염분이 포함된 소방수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었다. 이로 인해 피해 규모는 화재 지속시간이나 규모에 비해 고액에 이르게 되었다. 소방관이 작성한 피해 보고서는 단순히 외관상 확인할 수 있는 피해만을 임의로 집계한 것이다.”

-비디오테이프 및 진술서에 나오는 화재현장 조작 의혹에 대해.

“제보자들의 증언과 관련 화재 시점으로부터 장시간이 경과해 객관적 사실 파악과 자료 확보가 곤란하다. 그러나 당시 생산공정이나 이동통신 사업환경 등 제반 정황에 비춰볼 때 K 전 과장의 주장처럼 당사가 부당한 보험금 수령을 위해 외부에서 물품을 반입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K 전 과장에게 1억원을 전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제보 내용이 허위임이 분명하나 금감원이나 검찰에 의한 조사 및 수사가 진행될 경우 혐의사실이 마치 사실이라도 되는 양 언론에 유포돼 회사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또한 엄청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검찰 조사나 소송절차를 통한 진상 규명보다 단시간 내에 사건을 해결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회사로서 이익이라고 판단, K 전 과장에게 포상금에 상응하는 금원을 지급했다.”

-경찰이나 검찰 등 사정기관에 신고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 처리 아닌가.

“당시 K 전 과장의 주장이 허위사실임을 알고도 금전을 전달한 것은 본 사안이 이슈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언론 등에 알려질 우려가 있는 수사기관 고발 등 적극적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2005년 K 전 과장과 N 씨를 고발한 이유는.

“2004년 검찰의 내사결과 무혐의로 종결되었음에도 K 전 과장은 2005년 2월 금전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선동, 다른 직원들까지 규합 비디오테이프까지 촬영해 100억원을 요구했다. 더 이상 설득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다.”

-LG전자 화재보험금 지급 관련, LG화재에 관련 자료가 없는 이유는.

(LG화재 측 답변) 관련 서류는 보관 기간이 정해져 있다. 당시 자료는 보관 연한을 넘겨 폐기했다. 당시 이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퇴사했고, 일부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토치램프 작업 및 소금물을 뿌리는 등 조직적으로 화재현장을 조작했다는 직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주간동아’가 확보한 증언자만 해도 3명이나 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태도다.

화재현장에서 피해액을 부풀리기 위해 조직적 행위가 이뤄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당시 손실물품을 이동 보관한 지하 주차장에는 먼지가 많아 물품 조사를 진행하면서 주변에 물을 뿌려야 했는데 이러한 정황이 제보자 등에게 고의적으로 제품을 훼손하는 악의적 추측을 자아내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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