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쇼윈도 마법을 걸다

  • 입력 2005년 12월 2일 03시 06분


백화점과 호텔의 실내외 장식은 비주얼 머천다이저(VMD)들의 섬세한 손길로 꾸며진다. 이들은 자존심을 걸고 크리스마스 시즌 장식에 매달린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크리스마스 쇼윈도 장식 시안.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백화점과 호텔의 실내외 장식은 비주얼 머천다이저(VMD)들의 섬세한 손길로 꾸며진다. 이들은 자존심을 걸고 크리스마스 시즌 장식에 매달린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크리스마스 쇼윈도 장식 시안.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멋있다고요? 거의 ‘막일’이에요.” 12월이 되면 백화점 쇼윈도와 호텔 실내 장식은 절정에 이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대목을 위해 가장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다. ‘비주얼 머천다이저(VMD).’ 이들은 매장을 디자인하고 색깔을 입힌다. 백화점 쇼윈도와 실내외 장식은 물론 브랜드의 패션 코디까지 이들의 섬세한 손길이 닿는다. 롯데백화점 디자인실 황주미 VMD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해 뜨는 것을 보면서 퇴근하는 날이 많아 ‘시차 적응 기간’이라고 부른다”며 “밤을 새우면서 일해 몸은 힘들지만 딱딱한 유통 현장에 ‘쇼핑 문화’를 입힌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 크리스마스 장식…한 달 동안 잠도 못 자

“매장 앞 가로수의 나뭇잎이 떨어지기만 기다렸어요.”

유난히 따뜻했던 11월 초.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관할 구청인 중구청이 에너지 절약을 위해 가로수 점등 날짜를 늦춰 달라고 요청해 롯데백화점 VMD팀은 발을 동동 굴렀다.

경쟁 업체인 신세계와 크리스마스 시즌 가로수 점등 시점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박성민 VMD는 “서울 중구 명동 상권을 양분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장식을 위해 자존심을 건 경쟁을 한다”고 귀띔했다.

유통업체의 크리스마스 시즌 준비는 한여름에 시작된다. 7월부터 계획을 세우고, 수차례 수정 작업을 거친다. 구체적인 장식 계획이 세워지면 맞는 재료를 구하러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유럽의 크리스마스 장식 재료 박람회에서 선보인 최신 트렌드도 알아야 한다.

11월부터는 경쟁 업체에 뒤지지 않기 위해 거의 한 달 동안 인부들과 함께 밤샘 작업에 들어간다.

황주미 VMD는 “아침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밤새 백화점에 마법이 걸린 것 같다’고 말할 때 힘이 난다”고 말했다.

24시간 문을 여는 호텔은 손님이 적은 시간대를 골라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장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텔의 객실과 실내 장식은 ‘비주얼 디자이너’가 맡는다.

웨스틴조선호텔의 비주얼디자이너 조소진 씨는 “호텔 로비에 설치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했다”고 했다.

조 씨는 지난달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묵었던 부산웨스틴조선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의 실내장식을 맡았다.

“백악관 측이 행사 직전에 객실에 비치할 물품 리스트를 보내왔는데 안마침대 블루베리 등 구하기 힘든 것이 많아 힘들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부시 대통령도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을 들으니 뿌듯하더군요.”

○ 쇼핑에 문화를 입힌다

“가게에서 그냥 사과를 판다면, 백화점에선 사과를 예쁜 대접에 담아 ‘이렇게 먹으면 어떨까요’ 하고 식문화 트렌드를 함께 제안하죠.”(롯데백화점 박성민 VMD)

VMD들은 물건 파는 곳에 문화를 입힌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장식에도 트렌드와 유행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외의 패션 미술 음악 음식 등에 관심을 쏟으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익힌다.

신라호텔 면세점 황일경 VMD는 “특급호텔 면세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와 연계해 매장 곳곳을 꾸민다”며 “옥상에 마련한 휴식공간도 VMD들의 손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황 VMD는 “미국 뉴욕의 ‘버그도프 굿맨’이나 ‘바니스’ 같은 고급 백화점은 개성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며 “크리스마스 시즌의 명소가 될 수 있는 백화점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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