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사업은 ‘국고 삼키는 하마’

  • 입력 2005년 12월 8일 02시 57분


《지난해 10월 개항한 전남 목포시 신항. 한라건설 등이 1069억 원을 투입해 조성한 이곳에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7억7000만 원을 지원했다. 예정 수익의 90%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하기로 했기 때문. 신항은 올해도 당초 계획한 물동량(170만t)보다 실제 처리실적(150만t 추정)이 모자라 정부가 추가로 보조금(최소운영수입보장금)을 투입해야 할 전망이다.》

‘민자 항만 1호’로 출발한 신항이 국고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건 계획단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사안.

정부는 신항의 배후 산업단지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인근에 새로 400만 평의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항을 조성하던 중에 산업단지 지정 자체가 없던 일이 됐다.

사업기반을 잃은 신항은 개당 7만∼10만 원을 받는 수출용 컨테이너 유치 대신 대당 1만 원선인 자동차 수출용 항구로 전락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목포시 신항뿐이 아니다. 1994년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유치 촉진법’ 제정을 계기로 시작된 민자유치 사업이 사실상 국고 사업으로 바뀌고 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업계획을 내걸고 민자를 유치한 탓에 정부가 지급해야 할 최소운영수입보장금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 보장을 전제로 완공됐거나 추진 중인 민자 사업이 29개나 되는 데다 보장 기간도 20∼30년이나 돼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 국고 축내는 민자 사업

민자 유치 사업 가운데 이미 완공돼 중앙정부가 수입보장금을 지급하는 사업은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목포 신항 1-1단계 및 1-2단계 등 4곳.

이들 사업에 투입된 수입보장금은 2001년 1063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1507억 원으로 3년 만에 42%가 늘었다.

사업규모가 가장 큰 인천공항고속도로는 개통 이후 4년간 4050억 원이 지원됐으며 올해도 1200억 원가량이 국고에서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까지의 재정 지원이 1조6000억 원에 이르러 수입보장금이 도로 건설비용(1조3346억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울시는 우면산 터널에 235억 원을 지원했으며 광주시는 제2순환도로 1구간에 79억 원을 투입했다.

우면산 터널은 당초 하루 평균 6만6000대가량의 차량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1만 대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어서 당분간 수입보장금을 줄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광주 제2순환도로는 1구간에 이어 3구간이 작년 말 개통됨에 따라 올해 수입보장금으로 76억 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2007년에 4구간이 완공되면 연간 수입보장금 규모는 총 200억 원대로 늘어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들 사업 외에 민자 유치 방식으로 시공 중인 현장은 9개, 착공 준비 중인 사업은 14개다.

○ 무리한 사업계획이 문제

민자 유치 사업의 취지는 국내 민간 자본이나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재정 부담을 줄이자는 것. 하지만 외자가 유입된 사업은 한 곳도 없는 데다 무리한 사업 계획으로 국고 낭비만 심각하다.

천안논산고속도로는 2002년 기준으로 통행료가 한국도로공사 수준이면 하루 5만91대, 도로공사의 2배가 되면 2만1188대가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건설교통부가 민간사업자와 협약을 체결할 때 통행료를 높이는 대신 교통량은 일반 고속도로와 똑같이 가정했다.

우면산 터널도 무료로 개방할 때의 교통량을 전제로 협약을 맺어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의 고금리를 기준으로 수익률을 산정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례도 있다.

2009년 개통 예정인 서울∼춘천 고속도로는 민간 컨소시엄의 차입금 이자율을 10%로 계산했다. 2000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건교부가 협약을 체결한 2004년에는 이자율이 더 떨어진 만큼 이를 반영했다면 통행료도 낮추고, 수입보장금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이재철(李在哲) 사업평가관은 “일부 사업은 민자가 아닌 국고로 했을 때 비용이 덜 드는 것으로 조사되는 등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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