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깎지는 마시고요, 조금만 정리해주면 아이들 안아줄 때 따갑다는 불평이 없어질 거예요. 호호호….”(이마트 서울 구로점 김한림 판매사원)
도포를 입고 긴 수염을 연방 쓸어내리고 있는 할아버지. 판매사원의 말에 ‘홀려’ 면도기를 살펴본다.
옆에서 할머니가 ‘쓸데없이 돈 쓴다’며 할아버지를 타박한다. 그러자 판매사원이 재빨리 여성용 면도기를 들이댄다.
“(조용한 목소리로) 원래 이건 사은품이 아니지만 고객님께는 그냥 드릴게요. 여자도 다리 면도를 하면 얼마나 깔끔한데요….”
8일 경기 용인시 남사면 신세계 유통연수원에서 열린 이마트의 ‘판매왕 선발대회’ 경연 현장. 전국 75개 점포 2만여 명이 참가한 지역 예선을 뚫고 결선에 오른 고수급 판매사원 17명의 판매기법 경연으로 무대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들은 “고객의 마음을 잡는 것은 상품보다 친절”이라고 입을 모았다.
○판매는 ‘심리’ 게임
“우리 애는 두부 안 먹어요.”(남성 고객)
“혹시 두부 난자완스 아세요? 제가 적어놓은 요리법이 있는데….”(서울 공항점 윤성미 판매사원)
“이 옷은 ‘빈티’나 보여요.”(연인 고객)
“(정색을 하며) 무슨 말씀을…. 벨벳은 겨울의 귀족입니다. 여자친구가 예뻐서 너무 잘 어울리세요.”(부산 문현점 박성진 판매사원)
판매왕 선발대회에선 주어진 10분 동안 자신의 판매기법을 얼마나 잘 보여 주는지를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지나가는 고객의 시선을 어떻게 잡는지, 상품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지 등 10가지 기준을 본다.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활용한 판매기법은 다름 아닌 ‘친절’.
귀찮다고 하는 고객에게 부담 갖지 말고 먹어보거나 입어보라며 상냥하게 웃어야 고객이 경계심을 푼다고. 고객이 경계를 풀면 소비자 취향과 함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자녀 칭찬을 늘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경기 서수원점 굴비코너 전영숙 씨는 고객의 자녀를 ‘잘생긴 왕자님’이라고 치켜세워 눈길을 끌었다. 아이에게서 ‘엄마 이거 먹고 싶어’라는 말을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신세계 이마트 정오묵 부사장은 “사원들의 ‘끼’에 깜짝 놀랐다”며 “이 정도로 고객을 응대하면 경쟁사뿐 아니라 백화점도 상대가 안 될 것 같다”고 자랑했다.
○상품보다는 ‘배려’가 판매 비법
“남성 고객은 의심이 많아서 상품 지식으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여성 고객은 상품 자체보다 작은 배려에 감동하죠.”
부산 문현점 생활 인테리어용품 담당 박성진 씨는 이날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최다 득표상’을 받았다.
쇼핑 호스트 뺨치는 끼와 센스, 친절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박 씨는 “상품과 관계없이 작은 배려를 보이면 충동 구매하는 고객들도 적지 않다”며 웃었다.
이마트 이경상 대표는 “상품구색과 매장배치 레이아웃 등은 경쟁사가 금방 쫓아올 수 있지만 판매 노하우는 쉽게 따라할 수 없다”며 “우리의 경쟁력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회의 ‘판매왕’은 심사위원 점수와 실제 매출실적을 감안해 내년 2월경 발표할 예정이다.
용인=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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