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경제연구소에 입사했을 때 ‘증시의 큰 사이클을 2차례 경험하기 전에는 함부로 시장을 예측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큰 사이클 두 번이면 10년이죠.”
보고서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볼펜으로 얻어맞으면서 혼이 났던 시절. 많은 동료가 차례로 회사를 떠났지만 그는 이겨냈다.
“입사 동기 가운데 석박사가 즐비했던 터라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더 성실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덕분에 긴 수련을 버텨낸 것 같아요.”
○ 시장 예측의 최대 무기는 경험
밑바닥부터 거친 이 센터장의 경험이 가장 빛을 발한 시기는 2000년.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모든 증권사가 ‘연말 지수는 1,600’이라고 했던 그 해 초. 그는 홀로 “뚜렷한 상승 요인이 없다”며 하락 전망을 내놓았다.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지수)는 1년 내내 1,000 선에서 500 선까지 하강 곡선을 그렸다.
물론 이 센터장의 전망이 언제나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다. 2001년 미국 9·11테러 발생 직후 그는 “당분간 630이 한계”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지수는 이듬해 봄 900 선을 넘어섰다.
그때의 실수와 2002년 미래에셋 운용전략센터(현 운용리서치센터)에서의 부진은 큰 교훈이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내용을 투자자와 공유하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장의 큰 그림을 보며 예측이 미칠 영향을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리서치의 기본이 돼야 합니다.”
시장을 보는 가장 큰 무기는 오랜 경험을 통한 유추. 이런 점에서 이 센터장은 요즘 후배들의 성급함을 걱정한다.
“예전처럼 차근차근 기본 교육부터 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피터 린치 같은 대가도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이 센터장은 올해 주식시장에 대한 장기 전망 리포트를 5차례 발표했다. 현 증권가 센터장급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미국에서는 60대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흔히 볼 수 있어요. 40대만 되면 글쓰기에서 손을 떼는 국내 풍토와는 대조적이죠. 이코노미스트가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 살아 움직이는 시장에 발 맞춰야
이 센터장의 올해 국내 주식시장 예측은 적중했다. 그는 오래 소외됐던 종목들의 재평가가 내년 상반기(1∼6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종목 선택과 포트폴리오 구성의 중요성이 시장에서 비로소 입증되기 시작했다는 것.
“과거에는 삼성전자 같은 대형주를 무작정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수익이 났죠. 그러나 현 시점에서 기존 대형 우량주의 상승 여력은 크지 않습니다.”
그는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오래 묵은 습관과 편견을 버릴 것을 조언했다. 이 센터장이 지적한 국내 증시 투자자의 대표적인 편견은 IT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이다.
“연말마다 IT에 대해 밝은 전망이 쏟아진 게 벌써 7년째입니다. 어떤 산업이든 공급 과잉이 해소되려면 10년은 걸립니다. 2000년 IT 공급 과잉의 영향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올해 종목별 수익률 차이를 결정한 주요 요인은 과거의 누적 실적.
이 센터장은 “내년 하반기부터는 미래의 실적 전망에 따라 주가 흐름이 결정될 것”이라며 자동차부품과 증권업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종우 센터장은…
△1962년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 △1989∼92년 대우경제연구소 증권조사부 △1993∼97년 2월 대우투자자문 국내펀드운용팀 펀드매니저 △1997년 3월∼2002년 2월 대우증권 영업부,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2002년 3월∼2003년 2월 미래에셋 운용전략실장 △2003년 3월∼현재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1999∼2001년 ‘베스트 스트래티지스트’ 다수 선정 △2000년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 유공자상 수상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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