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은행님들, 곳간 좀 여시죠”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올해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낼 것이 확실한 은행들이 궁지에 몰렸다. 거센 임금인상 요구에, 주주들의 고(高)배당 요구에, 이익의 사회 환원 압력까지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0일 은행 공공성 강화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은행권이 막대한 이익을 낸 데는 국민의 혈세(공적자금)가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런 움직임에 일부 은행은 공익재단 설립 등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대다수 은행은 “번 돈으로 이익의 ‘질’을 높이는 것이 급하다”는 의견이다.》

○ ROA 1.32%… 美 상업은행 평균과 비슷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19개 은행의 순이익은 10조5214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5.3% 증가했다.

국민은행과 산업은행은 9월 말까지 각각 1조8285억 원, 1조7316억 원의 순이익을 내 연간 ‘순이익 2조 원 클럽’ 가입이 무난할 전망이다. 우리은행과 외환은행도 이미 순이익 1조 원을 넘어섰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19개 은행 평균 총자산이익률(ROA·당기순이익을 자산총액으로 나눈 것)은 지난해 0.85%에서 올해 1∼9월에는 1.32%가 됐다. 이는 미국 상업은행 평균(1.34%)과 맞먹는 수치.

그러나 내년 이후의 실적은 장담할 수 없다.

부실여신 발생이 줄어 쌓아야 할 충당금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조5346억 원 줄어든 데다 구조조정 관련 기업의 실적 호전에 따라 영업 외 이익이 2조4428억 원 증가한 덕에 순이익이 급증했기 때문.

영업에 따른 이익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6%(3749억 원) 감소했다.

○ 금감원, 中企대출 확대-서민대출 우대 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벌었으니 많이 써라’는 압력은 거세다. 직원들에게 4% 안팎의 임금 인상 외에 수백 %의 성과급을 주기로 한 은행이 속속 나오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3500억 원 이상의 배당을 할 계획이다. 외국인 지분이 많은 은행들은 벌써부터 배당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30% 이상을 배당에 썼다.

최근에는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 공공성 강화대책에 △중소기업 대출 확대 △서민 대출 우대 △환경보호기업 대출심사 우대 등을 유도하는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이에 앞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등은 은행이 지나치게 이익만 추구해 경제의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은행들을 압박했다.

일부 은행은 이미 공익재단 설립 등 사회공헌에 나섰다. 외환은행은 19일 50억 원 규모의 ‘외환 나눔재단’을 만들었고 신한은행 조흥은행 등으로 구성된 신한금융지주는 연내 500억 원을 출연해 ‘신한 장학재단’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 “이제 겨우 정상궤도 올랐는데…” 볼멘소리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정부와 감독 당국의 지적에 대해 한 시중은행장은 “이제야 겨우 정상궤도에 올랐는데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뜯어가려고만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하나은행 서근우 부행장은 “은행은 일반 기업과 달리 공공성이 강한 회사이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올해 은행이 거둔 이익은 일회성 요인이 많아 우려스럽긴 하지만 공공성을 강화하면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충성도를 높여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도 있다”며 “상업성과 공공성 간 균형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