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정책’은 서류속에만…‘법 따로 현실 따로’ 상황

  • 입력 2005년 12월 23일 03시 04분


《“관련 규정을 잘 모르니 주민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다.”(서울 마포구 도화동 Y아파트 관리사무소) 발코니 개조 합법화가 2일 시행에 들어간 후 20일이 지나도록 겉돌고 있다. 이미 발코니를 개조한 아파트(1∼3층 제외)는 대피공간(가구당 2m²)과 방화판 또는 방화유리를 설치한 뒤 관리사무소의 확인을 거쳐 시군구청에 신고해야 합법화되지만 아직까지 신고는 거의 없다. 200만 가구에 이르는 불법 발코니 개조 아파트를 합법화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가 결과적으로 또 다른 불법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 관리사무소 “지침 못받아”

“구청에서 아직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손을 놓고 있다.”

22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H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7개 동 540가구 중 200여 가구는 발코니를 이미 개조했는데 대피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신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마포구 도화동 Y아파트 관리사무소도 “구청은 대피공간을 만들려는 가구가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는다”며 “반상회에서 약식 안내문을 돌리려 했더니 주민들에게서 ‘날도 추운데 뭐하는 거냐’는 항의만 받았다”고 전했다.

본보가 22일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 서초 마포구청에 확인한 결과 이날까지 관리사무소를 통해 대피공간이나 방화판 등을 설치하겠다고 신고한 가구는 전혀 없었다.

마포구청 구병태 주택과장은 “서울이 이런 상황이니 지방에는 관련 규정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관리사무소에 나눠 줄 발코니 개조 관련 안내문을 만들고 있으나 복잡한 법령(건축법시행령 개정안)을 짜깁기할 수밖에 없어 골치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발코니를 개조해 살고 있는 함모(45·강남구 대치동 M아파트) 씨는 “관리사무소도 잘 모른다는데 누가 대피공간을 만들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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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불가능한 단속

발코니 개조에 따른 안전기준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시군구청은 “바뀐 법령대로 단속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행정력 부족 때문이다.

마포구청은 현재 아파트 120개 단지 3만9702가구의 안전 문제를 공무원 1명이 담당하고 있다. 구 과장은 “그나마 날씨가 추워 새로 발코니를 개조하는 가구가 거의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 정종학 주택과장은 “아파트가 너무 많아 발코니 개조 가구를 파악하기도 어렵다”며 “동사무소 단위로 단속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시군구청의 전문성 부족도 걸림돌이다.

서초구 건축과 H 씨는 “발코니 개조 아파트는 대피공간 외에 화염이 30분 이상 반대편으로 번지지 않는 방화유리나 방화판을 설치해야 하는데 일반 공무원이 어떻게 방화유리의 내연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서초구는 조만간 서초소방서에 자문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법 시행에 들어간 만큼 단속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며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을 간과한 정책으로 당분간 ‘법 따로, 현실 따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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