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3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혜동관’. 3평 남짓한 홀에는 4인용 식탁 4개가 놓여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손님은 없었다.
부인 박명남(朴明南) 씨가 선 채로 주문 전화를 받았다. 5분 뒤 배달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문 씨는 앉을 틈도 없이 자장면과 짬뽕이 든 배달 통을 들고 다시 나갔다.
“배달하던 종업원이 다쳐서 남편 혼자 배달해요. 오늘처럼 눈이 내리면 매출이 늘어 좋긴 하지만 길이 미끄러워 남편이 걱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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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오토바이를 탄 남편을 애틋한 눈길로 쳐다봤다.
중국음식점을 하던 이 부부는 2000년 3월 ‘애견카페가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애견카페를 무작정 개업했다. 3년간 1억 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결국 4000만 원이 넘는 빚과 문 씨에게 신용불량자라는 굴레만 남았다.
“신용불량자는 남의 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게 월세도 못 낼 정도로 사업이 계속 꼬이면서….”
문 씨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청주 시내에서 진천군에 있는 보증금 1500만 원, 월세 7만 원짜리로 집을 옮겼지만 빚을 다 갚지는 못했다.
2003년 12월부터 문 씨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부인 박 씨는 가게 점원으로 나섰다.
“돈 갚으라는 독촉 전화에 은행에서 찾아오고…. 그때는 잠들면서 다음 날 아침에 눈이 안 떠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박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2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본업’에 복귀했다. 월세 보증금 1500만 원과 박 씨가 친정에서 빌린 1000만 원, 박 씨의 신용카드 4장으로 받은 현금서비스 500만 원이 밑천이었다.
부인은 홀에서 음식을 나르고, 남편은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다. 부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일 14시간씩 함께 일했다.
다행히 하루 매출이 40만∼50만 원에 이를 정도로 장사는 잘됐다. 종업원 3명의 인건비와 재료비, 임차료 등을 빼고도 한 달에 3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애견카페를 하면서 생긴 빚에다 음식점 개업을 위해 무리하게 끌어다 쓴 카드 빚 때문에 이른바 ‘돌려 막기’로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어요. 100만 원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이해됐어요.”
부인이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자 남편 문 씨는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이 부부는 11월 사회연대은행에서 1500만 원을 지원받아 친정에서 빌린 돈과 카드 빚 일부를 갚으면서 한 고비를 넘겼다. 조흥은행에 채무가 있는 신용불량자에게 소액 대출사업을 하고 있는 사회연대은행이 문 씨 부부의 자활 의지와 사업성을 높게 평가한 것.
이 부부는 8일 4년 만에 처음으로 월 10만 원을 붓는 적금에 들었다.
재기를 다짐하는 부부에게 새해 소원을 물었다.
문 씨는 “식당에 딸린 방이 비좁아 중학교 1학년인 큰애가 삼촌 집에서 살고 있는데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인 박 씨는 “소원이 없어요.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라고 했다가 “음성 꽃동네에 매달 기부를 하다 못하고 있는데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기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성당에서 만나 결혼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청주=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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