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는 들떠 있었다. “더 오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넘쳐났지만 “이건 거품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흥분하는 듯한 분위기가 증권가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때 태광투신운용 장득수 상무(자산운용본부장)가 입을 열었다.
“코스닥에서 하루에 수십 개씩 상한가 종목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되나. 적자를 내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이건 분명히 과열이다.”
장 상무의 이런 경고는 증시 분위기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이 옳았다는 사실은 곧 시장에서 증명됐다. 12월 들어 코스닥지수는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하루에 수백억 원씩 사라졌다.》
○ ‘미스터 곧은 소리’
장 상무는 투자전략가 출신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신영증권에서 리서치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증권가에서 남들이 꺼리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몇 안 되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바른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아 ‘미스터 곧은 소리’로 통한다.
1999년 코스닥시장을 중심으로 증시가 활황세를 보일 때도 그는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그는 “지수 1,000을 견딜 만한 내실 있는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증시에는 온통 한몫 보기 위해 달려든 투기꾼뿐이다”라며 거품 주가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증권사에 소속된 직원이면서도 “자꾸 주식 샀다 팔았다 하면 안 된다. 증권사 직원 말 믿고 매매를 반복하면 돈 버는 곳은 증권사뿐이다”라며 회사에 불리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정작 한국 증시의 미래에 대해서는 밝게 보는 낙관론자다. 몇몇 종목의 거품 주가를 경계할 뿐 전체 증시의 흐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는 주가가 1,000 이하로 떨어졌던 4월 월간 신동아에 ‘강세장은 새벽이슬처럼 찾아온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3년 안에 지수가 2,000 선을 돌파하는 초(超)강세장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 “증시는 무서운 곳”
장 상무는 증시 거품의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연구를 많이 한 전문가다. 그의 저서인 ‘증권시장의 유혹’도 증시 투기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그는 실패한 투자자가 겪는 절망과 설움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한국 증시는 장기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들뜨면 곤란합니다. 앞으로 증시에서는 철저히 오를 종목만 오르는 선별적인 장세가 나타날 겁니다.”
역사적으로 증시에서 돈을 번 사람은 늘 소수였고, 거품의 역사는 항상 반복되곤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 상무는 개인투자자에게 2가지를 신신당부한다.
우선 다른 사람이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절대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
“빨리 많이 벌겠다고 생각하면 실적이 뒷받침 되지 않는 종목에 손이 갑니다. 최근 코스닥시장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이런 결과입니다.”
둘째는 철저히 여윳돈으로 투자하라는 것.
특히 최근 간접투자 열풍이 불면서 보유 자산 대부분을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모습에 대해서도 장 상무는 걱정한다. 여유 자금이 아닌 전 재산을 투자한 사람은 마음이 조급해져 자꾸 단기 성과에 치중하게 되기 때문.
그는 “올해 증시가 너무 좋아 개인들이 주식 투자의 무서움을 잊은 것 같다”며 “증시는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며 투자자는 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항상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장득수 상무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8년 신영증권 조사부 입사 △1992년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1999년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04년 3월 태광투신운용 자산운용본부장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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