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90년대 증시 활황으로 10년 장기 호황을 누렸다.
주가가 오르니 가계 금융자산이 늘어났고, 국민은 이를 바탕으로 소비를 늘려 경기를 활성화시켰다. 매출이 늘어난 기업의 주가는 또 올랐고, 국민소득도 다시 증가하는 선순환이 계속됐다.
내세울 만한 제조업이 거의 없으면서도 미국이 경제 강국으로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국제금융의 심장인 월스트리트 덕분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증시 활황에 투자자는 행복했다
지난해엔 국내 모든 투자 주체가 증시에서 웃었다. 특히 매년 증시에서 잃기만 했던 개인투자자들도 직접 투자로 53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개인투자자들은 지난해 증시에서 8조5492억 원을 순매도(매도 금액에서 매수 금액을 뺀 것)하며 투자 비중을 줄였다.
그 대신 주식형 펀드 수탁액이 늘었다. 지난해 주식형과 혼합형을 합한 범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17조3940억 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개인투자자 비중은 65%나 된다. 결국 직접투자에서 뺀 돈 이상을 간접투자에 넣은 셈이다.
기관투자가들은 8조4827억 원을 순매수하며 증시에서 비중을 높였다.
지난해 증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내국인의 약진이다. 적극적 투자로 내국인은 증시에서 새로 생긴 부 가운데 66%를 가져갔다. 2004년 64%, 2003년 60%보다 높아졌다.
개인투자자가 많이 사는 중소형 우량주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개인투자자의 금융소득도 크게 늘어났다.
외국인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던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유리자산운용의 스몰뷰티펀드, 신영투신운용의 마라톤펀드, 한국투신운용의 거꾸로펀드 등 중소형주 가치투자의 전범(典範)으로 평가받는 대표 펀드들이 속속 등장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 등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외국인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을 키운 것도 성과로 꼽힌다.
○증시가 한국 경제의 축을 바꿀 것인가
증시를 통해 늘어난 소득이 소비를 증진시키는 ‘자산 효과(wealth effect)’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이는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제품 만들기를 통해 부를 키우던 경제 구조가 금융을 통해 부를 늘리는 새로운 구조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증시에서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를 늘릴 만큼 아직 증시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기 때문.
미국 국민은 증시의 장기 활황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다.
미국인들은 주식투자의 대부분이 퇴직연금에 연계돼 있기 때문에 사실 증시가 활황을 보여도 당장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주가가 오르면 소비를 늘린다.
이는 자신들이 퇴직 이후에 받을 미래 소득이 확실히 늘어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간접투자 문화가 활성화된 것도, 증시가 오랜 박스권에서 탈출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오랫동안 급등락을 반복한 탓에 투자자들은 주가가 올라도 돈을 쓰지 않는다. 늘어난 자산을 소비로 연결하기보다 하락했을 때를 대비해 ‘밑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지난해 증시에서 늘어난 부가 당장 소비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증시 장기 활황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이 아니라 1996년이 돼서야 ‘자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자산 효과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큰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최소한 3년 이상 증시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자산 효과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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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부의 증가’ 어떻게 계산했나▼
본보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투자 주체별 시가총액, 범(汎)주식형 펀드 수탁액과 순자산, 기업이 지급한 배당금 총액 등을 활용해 증시에서 늘어난 부를 계산했다.
늘어난 부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먼저 투자 원금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국인의 투자 원금은 2004년 말 현재 개인과 일반 기업, 기관투자가 등 전체 내국인이 보유한 주식의 전체 시가총액과 2005년 내국인이 순매수(주식 매수 금액에서 매도 금액을 뺀 것)한 금액을 합해 산출했다. 전체 부 증가액은 2005년 말 내국인이 보유한 시가총액에서 투자 원금을 빼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여기에 1년 동안 받은 배당금을 더했다. 개인투자자의 금융자산 증가액 계산은 더 복잡하다. 증시에서 직접투자로 얻은 이익과 배당금 외에 간접투자로 번 돈이 있기 때문. 자산운용협회 자료를 통해 지난해 범주식형 펀드가 올린 수익이 9조1030억 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펀드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11월 말 현재 65.69%이므로 이를 감안해 펀드에서 개인이 번 돈을 5조9797억 원으로 추산했다. 단, 자산이 증가했다는 것이지 이것이 실제로 현금화됐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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