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세영]韓-인도 ‘중간수준의 FTA’ 맺자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03분


요즈음 아시아 각국이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보면 마치 합종연횡의 경제전쟁을 하는 것 같다. 동아시아의 맹주를 꿈꾸는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거대한 황하경제권에 편입시켜 일본을 포위하려 하고, 일본도 뒤질세라 싱가포르를 필두로 필리핀 등과 손을 잡고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인도도 서남아시아 6개국과 남아시아 자유무역협정(SAFTA)을 마무리 지은 데 이어 아세안 등과 FTA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그간 칠레 싱가포르 등과 FTA를 성사시켰으나 일본과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뒤 이렇다 할 낭보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달 인도와의 FTA 협상이 시작된다고 한다. 인구 11억 명의 탐나는 시장인 거대 신흥경제국 인도가 중국 일본을 제치고 유독 한국을 동아시아의 파트너로 삼은 것은 참으로 의미가 크다.

정부는 인도와의 FTA가 발효되면 연 30억 달러 이상의 수출 증대 효과가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협상을 타결하겠다고 서두른다. 그러나 인도와의 FTA 협상은 기존 협상 방식으로는 타결하기가 쉽지 않다. 인도 일본같이 경제 규모가 큰 나라와의 협상은 칠레 싱가포르 같은 중소 국가들과 다른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작년부터 방치되어 있는 한일 FTA부터 차분히 되새겨 보자.

우리는 일본이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을 꺼리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었다고만 알고 있다. 일본이 농산물시장을 반 정도만 열면 농산물의 수출 기회가 반감되고 이는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높은 수준’의 FTA 방침에 어긋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 높은 수준의 FTA를 해 두 나라가 시장을 활짝 열면 한국의 농산물 수출은 늘지 모르지만, 일본 공산물이 마음껏 한국 시장을 휩쓴다. 그렇게 되면 국내 중소 부품 소재 산업이 엄청난 개방의 충격을 받고 이를 도저히 국내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인도와 FTA를 체결하면 한일 FTA와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한다. 인도의 관세율 29%가 우리의 8% 수준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인도 제조업이 쑥대밭이 된다. 두 나라의 수출경쟁력을 분석하면 한국은 거의 모든 공산품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데 반해 인도는 겨우 면사 견직물 갑각류 광물 사탕수수 등에서 한국 시장을 넘볼 수 있다.

전면 개방을 하면 손해 볼 것을 아는 인도 정부의 반응은 짐작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많은 공산품을 관세 감면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른바 ‘민감 품목’에 넣으려고 한국 대표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아직 개방의 역사가 짧고 폐쇄경제의 잔재를 버리지 못한 인도가 우리에게만 유리한 높은 개방 수준을 받아들이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정부가 계속 높은 수준의 FTA를 고집하면 인도와의 협상은 얼마 못 가 일본과의 경우처럼 교착상태에 빠질 게 뻔하다.

인도와의 FTA를 조기에 성사시키려면 ‘중간 수준(mid-level)의 FTA’를 해야 한다. 다소 경제 효과가 떨어지더라도 서로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민감 품목은 일정 부분 제외해 주고 우선 FTA를 맺는 것이다. 이는 ‘상당 부분의 무역’을 제외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4조에 어긋나는 ‘낮은 수준의 FTA’와는 다르다. 사실 인도도 싱가포르와의 FTA에서 반 이상의 품목을 민감 품목으로 제외했다.

우리에게 인도와의 제휴는 중국 경제를 견제하며 한중일 FTA의 물꼬를 트는 이중 삼중의 정치경제적 효과가 있다. 따라서 정부가 새로운 통상 협상 전략을 수립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한-인도 FTA를 성사시키길 기대한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장·국제통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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