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바람둥이 소비자 변심막기’ 비결있다

  • 입력 2006년 1월 16일 03시 31분


“지금 생각해 보니 처음 틈새시장을 뚫을 때가 더 쉬웠던 것 같아요. 제품만으로 신선했으니까요.”(류필열 EXR 마케팅 부장)

EXR는 ‘섹시한’ 스포츠웨어로 젊은 층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의류 브랜드. 하지만 새해를 맞은 류 부장의 얼굴엔 수심이 묻어난다.

그는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면서 독특함과 신선함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며 “확실한 가치와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브랜드는 언제든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의 세계는 냉혹하다. 너무 빨리 변하는 소비자를 따라가자니 힘이 부치고, 잘 되는 것 같아 내버려 두면 소비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등을 돌린다. 그렇다고 대중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싸구려 브랜드’로 낙인찍혀 고급 이미지가 손상되기도 한단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유지하되 새로운 색깔을 덧칠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라’는 게 브랜드 담당자들의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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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브랜드는 없다

미국의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 ‘아이작 미즈라히’는 판매를 늘리기 위해 2003년부터 할인점 ‘타깃’에 자매 브랜드를 선보이고 기존 브랜드의 10분의 1 값에 팔았다. 아이작 미즈라히의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고급 이미지는 서서히 퇴색됐다.

영원할 것 같은 브랜드도 눈 깜짝할 사이에 명성이 무너질 수 있다. 1878년 탄생한 P&G의 아이보리 비누는 수십 년 동안 ‘순수함’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그러나 순수한 이미지에 안주한 결과 아이보리 비누는 1950년대 이후 유니레버의 도브에 시장을 내줬다.

국내 패션 브랜드의 부침(浮沈)은 더 심하다. 10년 이상 장수한 브랜드는 손에 꼽을 정도. 이 때문에 브랜드 담당자들은 늘 가슴을 졸인다.

국내 선두 의류업체의 한 임원도 “소비자가 너무 빨리 변해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있을지 걱정이다”고 털어놨다.

브랜드 담당자들은 “고급 이미지를 위해 ‘노 세일(No Sale)’ 정책을 채택할지, 주기적인 세일을 통해 고객층을 확대할지 등 내부 고민과 진통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브랜드는 신비로운 연인 같아야

“고객이 깜짝 놀라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고객이 기대한 만큼만 보여 주면 그걸로 끝장입니다.”(이진성 제일모직 빈폴 전략팀장)

“우리는 브랜드를 생선에 비유합니다.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든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자주 갈아 주는 것도 생선이나 마찬가지죠.”(서갑수 한섬 타임 마케팅팀 차장)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 선물상자 안의 작은 선물상자처럼 끝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인기 브랜드 담당자들은 브랜드의 생명력 유지를 위해 ‘신비스러움’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비로운 파트너에 매료돼 불꽃이 튀는 연애 관계처럼 말이다.

13년 동안 장수하고 있는 패션브랜드 타임은 일부러 대중매체 노출을 피하는 ‘신비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캐주얼 브랜드 빈폴은 17년 동안 ‘빈폴 레이디’, ‘빈폴 골프’ 등 쉼 없는 브랜드 확장전략을 통해 신선한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비자와 ‘연애관계’를 가장 잘 유지하는 곳은 명품업체들. 명품은 구매력이 떨어지는 소비자들도 ‘짝사랑’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다.

제일모직 이 팀장은 “브랜드 인지도는 3년만 노력하면 높아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설렘과 신비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는 브랜드가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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