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사 6개를 박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그러나 이 1분에서 2006년 르노삼성차의 변화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에는 ‘NISSAN(닛산)’ 이라는 영문 마크가 선명했다.
○ 애물단지에서 수출 역군으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방한해 “2006년부터 연 3만 대씩 SM3에 닛산 상표를 붙여 러시아, 중남미 등으로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날 르노삼성차는 처음으로 최근 생산한 6대의 전시용 SM3를 러시아행 화물선에 선적했다.
소량의 SM5가 요르단 등지에 수출된 것을 제외하면 이 회사가 본격적으로 수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공장 이기인(47)생산기술 담당 이사는 “일본에서 ‘기술의 닛산’으로 불리던 닛산의 상표를 SM3에 붙이는 것은 그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1995년 출범 당시 부산 지역 경제의 ‘희망’이었던 삼성차. 그러나 무리한 투자와 부실 경영,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9년 7월 4조7000여억 원의 부채를 남긴 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협력업체의 연쇄 도산을 몰고 온 삼성차는 지역 경제의 애물단지가 됐다.
그러나 삼성차는 2000년 르노그룹에 편입된 이후 차근차근 정상화 궤도를 밟았고, 공장 가동을 중단한 지 6년 만에 수출 역군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준걸(47) 지원담당 이사는 “삼성 특유의 품질 제일주의와 르노의 원가 절감 노하우가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 젊은 일꾼, 젊은 차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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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길이 2.4km의 이 공장 조립 라인에서는 1분에 한 대씩, 한 시간에 60대의 차가 쏟아져 나온다. 내수 부진으로 생산량이 부쩍 줄었던 2003년 2월의 생산량은 시간당 45대였다.
당연히 일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요즘 근로자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일이 없어’ 공장을 멈췄던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조립팀 김길수(32) 반장은 “2000년 5월 공장을 재가동할 때 들은 작업 벨소리를 잊을 수 없다”며 “수출로 안정된 생산량을 확보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공장 근로자는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근로자 평균 연령은 31세. 삼성차 출범 당시 다른 업체에서 숙련공을 데려오지 않고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고졸 사원을 뽑아 교육시킨 결과다.
젊은 만큼 의욕이 넘친다. 입사 4년차인 김도연(28) 씨는 “이 회사에 다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부산 경제의 희망을 다시 엿볼 수 있었다.
부산=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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