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인권과 경제’ 상생의 길은

  • 입력 2006년 1월 20일 03시 03분


최근 경제5단체장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공익사업장 파업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폐지 등)를 ‘이상론’이라고 비판한 것을 계기로 인권과 경제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치들을 ‘인권’이라 부르는 것을 생각하면, 경제가 인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논란이 생기는 것은 그동안 인권 및 인권위의 활동에 대한 인식에 있어 적지 않은 문제가 잠복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실현시키는 데 있으며, 인권이야말로 전체 국가공동체의 중심적 가치로 인정되는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 5년간 인권의 확대·강화에 상당한 기여를 해 왔다. 특히 의문사 진상조사 등과 관련한 인권위의 기여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인권위에 대한 비판 또한 적지 않다. 인권위 권고의 일부는 권고대상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국민까지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고, 과도한 정치색을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구속력 있는 결정이 아닌 ‘권고’이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남발되는 것이 아니냐는 눈길도 있다.

하지만 인권위의 일부 권고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인권위의 긍정적 기여조차 부정해서는 안 된다. 경제를 이유로 인권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 경제가 중요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물질의 취득과 행사 및 이를 통한 ‘삶의 질’의 확보, 즉 또 다른 인권의 실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적절한 대체복무, 즉 군대보다 장기간 더 힘든 일을 하게 되지만 양심상의 이유 때문에 그와 같은 부담을 기꺼이 지게 되는 대체복무가 마련될 경우에는 굳이 부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한 경우에는 대체복무가 병역기피의 수단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무원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공무원의 선거권·피선거권을 부정하지 못하는 이상 정치활동의 일반적 금지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공무수행의 객관성과 중립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공무원의 근무시간 외 정치활동에 대해서도 (판검사 등은 예외로 해야 하겠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단체의 처지에서 오히려 핵심적인 것은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폐지와 같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공익사업장은 안보나 국가경제, 국민의 편의와 직접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공익사업장 분규는 정부가 노동자 또는 사용자의 처지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익 내지 국민의 처지에서 문제 해결을 생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인권은 궁극적 목적이고, 경제는 이를 위한 수단이다. 인권 없는 경제가 맹목이듯이 최소한의 물질적 바탕을 갖추지 못한 인권은 공허하다. 이 때문에 국민은 경제적 기초를 확보한 실질적인 인권보장을 원하는 것이다.

또한 인권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권의 정당성은 국민에 의해 ‘승인’되어야 하며, 인권위는 이렇게 승인된 인권의 실현에 앞장서야 한다.

경제단체의 수장들이 인권을 경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인권위도 또한 독단에 빠지거나 국민을 두고 홀로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 인권위 ‘권고’의 힘은 인권위 자체의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권위의 권고에 국민이 공감하고, 국민의 힘이 이를 뒷받침할 때 비로소 인권위의 ‘권고’가 다른 국가기관에 대한 권위와 사실상의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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