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20일 “스크린쿼터 문제는 미국과 비율을 두고 협상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 측 방안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은 연간 146일(40%)인 한국영화 의무상영 기간을 73일(20%)로 줄이자고 제안한 상태다.
이에 맞춰 재정경제부 고위당국자가 스크린쿼터 고수를 주장하는 영화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정부 대응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 현실화되는 스크린쿼터 축소
랍 포트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통상장관회담에서 “FTA 협상을 시작하려면 먼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라”고 요구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13일 타결됐기 때문에 이제 남은 걸림돌은 스크린쿼터뿐이다.
김현종(金鉉宗) 통상교섭본부장은 20일 브리핑에서 “스크린쿼터 문제는 반드시 우리가 먼저 해결한 뒤 미국에 협상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 측 방안을 받느냐의 여부가 FTA 협상의 전제조건”이라며 “비율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는 방안은 2000년 한미투자협정(BIT) 협상이 공전되기 전 양국이 마지막으로 접근했던 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 측 방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영화산업 진흥대책을 내놓아 영화계를 달랠 것으로 보인다.
● 영화계 압박하는 정부
권태신(權泰信)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20일 ‘CEO네트워크’ 주최 조찬포럼에서 “집단 이기주의는 스크린쿼터에도 있고 자기 것만 안 잃으려고 한다”면서 영화계의 반발 움직임을 비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산영화의 점유율이 40%를 넘으면 스크린쿼터를 줄이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시장점유율이 59%까지 올라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권 차관의 발언에 대해 영화계 일각에서는 미국 측 안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전 길 닦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양기환(梁基煥) 사무처장은 “우리는 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내거는 미국의 태도를 후안무치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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