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초콜릿’은 인기 있는 휴대전화기 제품명을, ‘멜론’은 음악서비스 사이트를 뜻한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제목을 붙인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전복적 문화 마케팅의 중심에는 ‘미각(味覺)’이 숨어 있다. 서로 다른 감각들을 결부시키는 공감각적 문화 마케팅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시각과 청각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광고, 음악, 출판, 미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미각이 문화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기 ‘초콜릿’은 지난해 말 출시 이후 1개월 반 만에 8만 대가 팔렸다. 딱딱하고 차가운 기계제품에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초콜릿의 감성 요인을 이입한 것이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휴대전화’를 넘어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조명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브랜드를 창안한 LG전자의 김주진(44) 부장은 “초콜릿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 인간 간의 교감, 커뮤니케이션, 정(情) 등을 이끌어 내려 했던 감성 마케팅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재작년 11월 시작된 SK텔레콤 인터넷 음악서비스 ‘멜론’의 TV 광고 중 하나는 진짜 멜론에 헤드폰 잭을 꽂자 흥겨운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는 내용이다. 달콤한 멜론의 맛을 흥겨운 힙합 음악에 연결시킨 광고의 힘을 얻어 1년 만에 가입자가 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미각이 마케팅의 핵심 타깃으로 급부상한 것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기계화, 디지털화, 수치화하는 시대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 감각의 가장 기본인 미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후추처럼 톡톡 튀는 향신료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최근 데뷔 앨범을 내 인기를 얻고 있는 모던 록그룹 ‘페퍼톤스’는 후추(pepper)와 음조(tones)를 결합해 이름을 지었다.
이들 외에도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그러면서 촉촉한 느낌’을 표방한 5인조 팝 재즈 밴드 ‘푸딩’, 남성 발라드 가수 ‘레몬트리’ 등 미각을 그룹명이나 노래 제목에 붙이는 가수들이 많아지고 있다.
미술계에서도 음식을 작품의 주요 코드로 삼는 예술가가 늘고 있다. 설치작가 조성묵 씨는 삶기 전의 국수 가락을 이용해 의자 침대 소파 등 가구를 만들었고, 사진작가 구성연 씨는 매화나무에 꽃 대신 팝콘을 박은 사진작품 등을 선보였다.
▽“美食 상상시켜 구매 자극”▽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카이스갤러리는 아예 ‘미식가’전을 열었는데 수천 g의 초콜릿을 녹여서 그린 풍경화,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젤리 빈으로 만든 변기가 등장했다.
달콤한 마시멜로를 소재로 해 경제경영 베스트셀러가 된 ‘마시멜로 이야기’나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소설집 ‘카스테라’ 등도 이런 시대적 감수성을 상징하는 징후로 볼 수 있다.
화장품도 ‘스킨푸드’나 ‘그린티&스파이스드 그린티’처럼 음식 이미지로 포장된 제품이 인기다.
브랜드컨설팅사 ‘브릿지’의 신병철 대표는 “어떤 문화 현상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얼마나 낯선가’와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가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면서 “미각은 비주얼(시각)과 사운드(청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선 감각이었지만 최근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공통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낳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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