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사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물러나는 날이다. 이날로 벤 버냉키 차기 의장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린스펀 의장은 그동안 경제대통령, 마에스트로(거장)로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의 퇴장을 앞두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들이 18년에 걸친 ‘그린스펀 시대’의 명과 암을 조명하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의 퇴장은 웬만한 국가의 정권 교체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명(明)=인플레이션과의 전쟁으로 명성을 날린 폴 볼커 전 의장 후임으로 1987년 임명됐을 당시 그는 ‘약체’로 꼽혔다.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잘 나가는 일본 경제에 비해 뒤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취임한 지 두 달도 안 돼 주식시장이 대폭락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이후에도 아시아 금융위기를 포함해 러시아와 멕시코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했다. 2000, 2001년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저금리 정책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갔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미국 경제는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유례없는 장기호황을 기록했다. 두 차례 경기침체가 있었지만 그 여파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물가는 안정됐다.
▽암(暗)=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14일자)에서 주택가격 거품을 방치한 것을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았다. 미국 소비자들이 높은 주택가격을 담보로 소득증가 수준보다 소비를 많이 해 결국은 미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도 23일 “그의 재임기간에 미국 경제가 누렸던 번영은 빚을 기반으로 이뤄진 것”이었다며 그린스펀 의장은 ‘빚투성이 나라’를 남기고 떠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의 가계부채는 저금리 정책 때문에 지난해 3분기(7∼9월) 말 기준으로 11조4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였다.
▽버냉키는?=그는 FRB 재직 당시 그린스펀 의장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FRB 정책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
데이비드 위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차이가 있다면 버냉키 차기 의장이 그린스펀 의장에 비해 성장률보다는 인플레이션에 더 중점을 두는 점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린스펀 의장이 남겨놓고 떠나는 불균형 때문에 그가 고전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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