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경영바통’…2세들 손안으로

  • 입력 2006년 1월 26일 03시 00분


《“중요한 시기가 오면 경영 전면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장남 정용진(37) 신세계 부사장은 20일 중국 이마트 5호점인 톈진(天津) 탕구(塘沽)점 개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부사장은 “구학서 신세계 총괄사장, 이경상 신세계 이마트부문 대표 등 훌륭한 전문경영인에게서 아직 배울 것이 많다.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은 최소한 몇 년 뒤에나 가능한 일”이라며 ‘물타기’를 했지만 경영권 행사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직접 밝힌 것이어서 유통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유통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주요 그룹의 2세 경영권 이양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연말연시에 실시한 인사와 지분 정리를 통해 2세 경영인들은 경영 일선에 등장하거나 승계 계열사 교통정리에 잇따라 나섰다. ‘노출’을 꺼리던 2세 경영자들도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동빈부회장, 롯데쇼핑 상장 진두지휘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롯데그룹. 다음 달로 예정된 롯데쇼핑 상장과 관련해 신격호 회장은 원칙만 제시하고, 차남 신동빈(50) 부회장이 사실상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갖고 진두지휘하고 있다.

롯데쇼핑 상장을 계기로 경영권 이양이 본격화한 것이라는 관측도 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롯데그룹이 17일 롯데쇼핑의 임원을 17명에서 8명으로 줄이면서 신 회장의 장남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과 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을 제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의 조치라고 유통업계는 보고 있다.

롯데는 공식적으로는 “롯데쇼핑의 등기임원이 다른 상장사에 비해 많다는 지적이 있어 줄였을 뿐 큰 의미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신 부회장의 위상이 높아지고, 후계구도가 분명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세계, 정용진-유경 남매 교통정리

정용진 부사장의 위상이 높아지는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2월 이명희 회장의 사위 문성욱(35) 씨를 시스템통합업체인 ‘신세계 아이 앤 씨’ 상무로 발령했다.

이에 따라 신세계 그룹 2세 간 역할 분담의 밑그림이 대체로 그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 부사장이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을 맡고 동생 정유경(33) 조선호텔 상무와 남편인 문 씨가 호텔을 포함한 다른 분야를 맡는 방식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 부사장은 1995년 신세계에 입사해 기획조정실 상무를 거쳐 1999년 부사장으로 임명됐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국내외 이마트 개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유통부문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

○현대백화점 ‘지분이양 완료’ 초읽기

현대백화점 그룹은 지난해 12월 임원인사에서 정몽근 회장의 차남인 그룹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정교선(31) 이사를 상무로 승진 발령했다. 이 그룹은 정 회장의 장남 정지선(33) 현대백화점 부회장에게 백화점을, 정교선 상무에게 여행사업과 식자재 납품업을 하는 ‘현대백화점 H&S’를 각각 맡기는 방식으로 사실상 후계구도가 결정돼 있다.

정 회장은 2004년 12월 정지선 부회장에게 주식 215만 주(지분 9.58%)를 넘기면서 최대 주주 자리를 내줬고, 같은 해 11월 차남 정교선 씨에게도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 주(10%)를 주며 2대 주주로 올려놨다.

따라서 이번 인사는 경영수업에 필요한 중간조치일 뿐 경영권 구도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자신이 보유하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디씨씨’의 주식 235만1000주(13.33%)를 동생 정 상무에 전량 증여해 현대백화점 그룹의 방송부문을 정 상무가 추가로 맡게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애경, 장 회장 막내아들 사장 승진

애경그룹은 지난해 12월 14일 장영신 회장의 막내아들인 채승석(35) 애경개발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이번 인사로 장 회장의 3남 1녀 가운데 장남 채형석(45) 그룹 부회장이 그룹 전체를 이끌고 채 부회장 아래 △차남 채동석(41) 애경백화점 사장은 유통부문 △사위 안용찬(46) 애경 사장은 생활용품 부문 △막내 채승석 사장은 부동산과 골프장을 각각 맡는 방식이 굳어진 것으로 유통업계는 보고 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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