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원화 환율이 크게 떨어져 960원을 경계로 오르내리자 전화벨이 잇따라 울렸다.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게 이날 처음 시행된 외환거래 2중호가(呼價)제도 때문이냐는 문의전화였다.
외환 딜러들은 “환율 하락과 제도 변경은 전혀 관계없다”고 설명하느라 바빴다.
이날부터 ‘2중호가제도’가 시행되면서 은행 간 외환거래에서 실제로 체결된 가격을 은행이 아닌 일반인은 볼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실시간으로 외환거래 가격을 받아보던 기업과 역외선물환(NDF) 시장의 외국인들은 은행이 스프레드(마진)를 덧붙여 공개하는 ‘준거 환율’만 받아볼 수 있다.
외환시장이 은행 간 시장과 대(對)고객 시장으로 엄격히 분리된 것.
시행 첫날 큰 혼란은 없었지만 기업 관계자들은 다소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우조선해양 외환업무팀 관계자는 “이전에는 최저 체결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거래가 쉬웠는데 지금은 과연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환율거래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편하다”고 푸념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같으면 은행에 대한 영향력이 커 제도 변경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일일이 은행에 문의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일부 중소기업은 실시간으로 환율을 볼 수 없게 되자 어디에 문의해야 할지 몰라 은행 지점을 통해 환율의 호가를 묻기도 했다.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구길모 과장은 “은행 사이에 경쟁이 생긴 점이 가장 큰 변화”라며 “다른 은행이 고객에게 부른 호가를 보면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려고 ‘눈치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실시간 체결가격 정보가 일부 외환 선물회사 계정을 통해 밖으로 새나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행과 선물회사만 쓰는 계정을 기업이나 개인이 빌려 사용할 수도 있고 메신저나 전화로 물어보면 쉽게 은행 간 호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서울외환시장의 정보를 통제해 투기세력의 개입을 방어하겠다는 2중호가제의 당초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계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금융회사의 계정을 폐쇄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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