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KT&G인가
미국 항공사인 TWA와 식품업체 나비스코의 인수합병(M&A) 등으로 유명해진 아이칸 씨는 지난해부터 5% 미만의 KT&G 지분을 매입했다.
KT&G의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고 판단한 아이칸 씨는 지난해 말 KT&G 측에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 상장, 자사주(自社株) 매입, 부동산 매각 등 주가 부양책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아이칸 씨는 곧바로 특유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해외 펀드와 연합해 작년 말 지분을 6.59%로 끌어올린 뒤 경영 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민영화된 공기업인 KT&G는 비상장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와 전국 곳곳의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큰 데 비해 대주주 비율이 낮아 아이칸 씨의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SK ‘소버린 사태’와의 차이
소버린자산운용은 2003년 3월부터 SK㈜의 지분 매입을 시작해 4월 14.99%까지 지분을 끌어올렸다. 이후 SK는 2년간 최태원 회장 퇴진 요구 등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에 시달렸다.
당시 SK는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등 휘청대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KT&G에 대해선 투명경영과 주주가치 제고에 힘써 온 우량기업이라는 평판이 높았다. 악재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 없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문제는 주인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지배주주가 없다는 점이 KT&G의 약점으로 부각됐다는 것이다.
2003년 소버린에 공격당할 때 SK는 SKC&C와 SK케미칼, 최태원 회장 등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15.93%에 이른 데다 우호지분 확보로 소버린을 물리칠 수 있었다.
KT&G의 지분은 국내주주 36.91%(자사주 9.5%, 중소기업은행 5.85%. 우리사주조합 5.75%, 소액주주 15.81%)와 외국인 63.09%(프랭클린 뮤추얼펀드 7.15%, 아이칸 씨 측 6.59%, 소액주주 49.35%)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KT&G의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표 대결에서는 우호지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장기전으로 갈 수도
소버린과 마찬가지로 아이칸 씨도 6일 외국인 사외이사 3명을 후보로 추천하는 등 단계적으로 KT&G를 공략하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싸울수록 주가는 올라간다는 생각을 가진 해외 주주들이 내년 주총에 대비해 아이칸 씨 쪽으로 힘을 보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KT&G는 ‘방어 전략’으로 들어갔다.
최근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외국인 우호지분을 모아 달라는 의미도 된다.
또 곽영균 KT&G 사장이 이르면 다음 주부터 열흘 정도 해외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하는 등 발로 뛸 계획이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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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경영권 공방 일지
△1월 1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칼 아이칸 씨가 KT&G에 자회사 매각이나 자산 처분 등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
△1월 18일: KT&G, “현재로선 아이칸 씨의 요구를 수용할 계획 없다”고 발표
△1월 25일: 곽영균 KT&G 사장, 기업설명회에서 “당분간 한국인삼공사를 기업공개하거나 보유 부동산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밝힘
△2월 3일: KT&G, 아이칸 파트너스가 경영 참여 목적으로 발행주식 1700여만 주를 매입해 6.6%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공시
△2월 6일: 아이칸 씨 측, KT&G에 3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집중투표제를 요구
△2월 7일: 아이칸 씨 측 이사 후보 리히텐슈타인, 곽 사장을 직접 만나 인삼공사 기업공개와 유휴 부동산 매각 등 제안
△2월 9일: KT&G, 기업설명회에서 아이칸 씨 요구 공식 거절
△2월 10일: KT&G, 골드만삭스와 경영권 방어 자문 계약, 아이칸 씨, KT&G 위임장 확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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