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은행은 매년 초 정기인사가 끝나면 지점장들을 모아 회의를 합니다. 종전에는 주로 ‘영업점장 회의’라고 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진 올해는 ‘전진대회’ 등 전투 용어를 쓰는 은행도 있습니다.
이때 은행장이 일선 ‘사령관’들에게 주는 선물이 요즘 은행가에서 화제입니다.
‘검투사’가 별명인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지역 영업본부장들에게 단검이 든 지휘봉을 선물했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워라’는 메시지가 담긴 걸로 해석됩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0일 명품 볼펜인 몽블랑을 지점장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이를 받아든 한 지점장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먼저 떠올렸다”고 합니다. 우리은행이 칼을 줬으니 국민은행은 이보다 강한 펜을 줬다는 것이지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졌지만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강 행장다운 선물이라는 평가입니다.
강 행장은 “우리은행을 의식한 것도, ‘칼보다 강한 펜’을 선물한 것도 아니다”고 펄쩍 뛰었다고 합니다.
말 많은 은행권에서는 강 행장이 황 행장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입방아를 찧습니다. 두 행장이 외국계 금융회사(뱅커스트러스트그룹)에서 함께 일했던 각별한 인연 외에 매물(賣物)로 나온 외환은행 인수와 연결짓기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강 행장이 외환은행 인수를 선언하자 곧바로 황 행장은 “하나금융지주보다는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가져가는 게 좋은 조합”이라고 지원 사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펜을 받아든 지점장들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올해 경영목표로 ‘순이익 1조 원, 시가총액 10조 원, 자산규모 100조 원 달성’을 공언한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이달 초 지역본부장, 지점장, 기업금융지점장 등 600여 명에게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선물했습니다. 고가(高價)인 만큼 지점 차량에 붙이는 조건입니다.
책상에 앉아 있지 말고 고객을 빠르고 정확하게 열심히 찾아다니라는 뜻입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은 직원들에게 학용품 세트를 나눠 줬습니다.
한 직원은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라는 뜻인 것 같다”고 풀이했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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