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히 자고 있는 고양이를 깨우는 소리.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 한 대가 넓은 책상 위에서 탁구 선수처럼 벽에다 공을 치고 받는다. 올려치고, 내려치고 강한 스매싱까지. 유연한 몸놀림은 탁구 선수 뺨친다. ‘모니터 선수’는 머리에 공을 맞은 고양이가 화를 내며 올라타자 몸을 완벽하게 접어 버린다. ‘게임 끝’이다. 이중으로 접을 수 있는 ‘싱크 마스터’ 모니터의 특징을 재미있게 표현한 CF의 한 장면이다.
2002년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선임 디자이너 김의석(34) 씨의 작품이다. 싱크 마스터 ‘152T’ ‘172X’ ‘173P’ 시리즈는 모니터 지지대를 이중으로 접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정보기술(IT)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온 그가 입사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시작은 이랬다. 그에게 얇은 패널을 이용해 슬림 모니터를 디자인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의 생각은 ‘패널이 얇은데 모니터 지지대가 두꺼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모니터를 접어 보면 어떨까? 사업부에서 여기에 살을 더 붙였다. 모니터를 실어 나를 때 물류비가 많이 드는데 아예 접어버려 비용을 절감하면 어떻겠느냐는 것. 그의 결론은 “그래, 접는 김에 더 접어보자”는 것이었다.
포클레인, 사람의 팔, 100m 달리기를 시작하는 운동선수의 다리…. 모니터를 접겠다는 결심을 한 뒤부터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접히는 구조물뿐이었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물류비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싱크 마스터의 경제적 효과는 대단했다. 이전에 비해 물류비가 50% 감소했고, 비행기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물량도 3배 정도 늘어났다. 굿 디자인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디자인과 테크놀로지가 조화를 이룬 이 시리즈는 상복도 많았다. 2004년 미국 산업디자인협회가 주관하는 세계적인 권위의 디자인상인 ‘IDEA’ 금상을 비롯해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 등 일명 업계의 ‘그랜드 슬램’으로 불리는 4개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싱크 마스터는 현재 삼성전자 전체 모니터 판매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성능의 일본 모니터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했던 삼성전자에 힘을 실어줘 세계 시장에서 순위 다툼을 할 만큼 성공을 거뒀다. 2004년까지 모니터와 TV의 양산 제품을 디자인하던 그는 현재 디자인 선행 개발팀으로 옮겨 미래 트렌드를 예측한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있다.
전은경 월간 ‘디자인’ 기자 lilith@design.co.kr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