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헤지펀드의 한국 공습

  • 입력 2006년 3월 1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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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경영권을 위협하는 칼 아이칸은 ‘기업 사냥꾼’으로 불린다. ‘상어’란 별명도 갖고 있다. 개인 재산 78억 달러(약 7조8000억 원)로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부자(富者) 24위다.

그는 “비즈니스 세계에선 아무도 믿지 말라”고 강조한다. “친구를 원한다면 차라리 개를 가져라(If you want a friend, get a dog)”고까지 했다. 시장(市場)에서 저평가된 기업이나 대주주가 없어 지분이 분산된 기업을 상대로 경영권 공세를 벌인 뒤 높은 가격에 되팔아 차익을 거두는 그린메일(green mail) 전문가다.

‘아이칸 연합군’의 KT&G 공격은 외국 투기자본의 공세가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준다. 과거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 공격과 소버린자산운용의 SK㈜ 공격은 재벌을 겨냥했다. 반면 이번에는 타깃이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민영화된 공기업이다. 앞으로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가 대상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일각에서는 소버린이나 아이칸의 공세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져 일반 주주와 해당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경영 혁신에 소홀한 경영진이 문제를 자초했다는 ‘내부 책임론’도 빠지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KT&G 경영진의 상황 판단이 안이했다는 느낌은 든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기업지배구조 최우수상을 받았다. 올해 2월에는 한국윤리경영 종합대상도 수상했다. 배당금도 많았고 기업설명회(IR) 활동도 열심이었다.

이쯤 되면 걸핏하면 한국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라던 정부나 일부 사회단체로서는 할 말이 없는 셈이다. 하기야 대주주가 없을수록 좋은 기업이라는 주장 자체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허구(虛構)지만.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을 무조건 반대하진 않는다.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영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방패’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창(槍)’으로 찌르는 것만 정당화하긴 어렵다. 경영권 공격 시도만 하면 막대한 차익이 보장되고 잘하면 괜찮은 기업을 통째로 먹을 수 있는 현주소는 정상이 아니다.

주가만 오르면 좋은 것이 아니냐는 논리도 그렇다. 경영권 방어에 정신없는 경영진은 미래를 위한 투자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헤지펀드가 한탕을 하고 빠져나간 뒤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미지수다.

글로벌화로 국경의 개념은 과거보다 퇴색했다. 하지만 지금도 분명히 경제적 국익(國益)의 의미는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미국이 자국 석유회사 유노칼에 대한 중국의 인수를 막고, 유럽에서 단 한 주(株)의 정부 지분만 갖고도 외국 자본의 중요 기업 인수에 제동을 걸 수 있게 했을까.

일본 경제평론가 하마다 가즈유키는 1999년에 펴낸 ‘헤지펀드’란 책의 부제(副題)를 ‘세기말의 요괴(妖怪)’로 붙였다. 그는 “헤지펀드가 때로 신흥시장 경제시스템의 모순을 ‘교정(矯正)’하기도 하지만 그 교정이 지나쳐 환자가 빈사(瀕死)의 타격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지나친 국수주의는 경계해야지만 월가(街)의 논리도 만능은 아니다. 경제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도그마여선 안 된다. 사안별로 따져서 무엇이 더 많은 국민의 복리와 국부(國富) 증진에 도움이 되느냐로 접근해야 후유증이 적다. 아직 경제에 국경은 있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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