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아이칸 “서류 치우고 말로만…” 전자재판 화끈

  • 입력 2006년 3월 10일 03시 12분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9일 오전 11시 2분 대전지방법원 제304호 법정.

법정경위가 방청객을 일어나게 한 뒤 대전지법 수석부 권순일(權純一) 부장판사와 두 명의 배석 판사가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부와 방청객들이 동시에 자리에 앉으면서 재판이 시작됐다.

120석의 방청석은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방청석은 취재진과 양측 대리인들, KT&G 관계자, 다른 재판부 판사들과 법원 직원 등으로 가득 찼다.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씨 측이 KT&G를 상대로 낸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쏠린 관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칸 씨의 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대륙과 에버그린이 나섰고 KT&G에서는 새날합동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 서정을 내세웠다.

○ 일괄투표냐 분리투표냐

아이칸 씨의 대리인으로 나선 에버그린의 송현웅 변호사가 일어섰다.

“KT&G는 주주가 제안한 의안을 임의로 수정해 주주제안권의 핵심적 내용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아이칸 씨 측은 이달 임기가 끝나는 6명의 사외이사 후보에 3명을 추천했으나 KT&G 이사회는 4명은 감사위원 사외이사로, 2명은 일반 사외이사로 구분해 뽑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아이칸 씨 측은 많이 뽑혀야 일반 사외이사 2명밖에 안 된다.

아이칸 씨 측 주장은 사외이사 6명을 모두 주주총회에서의 득표수에 따른 집중투표제로 뽑자는 얘기다. 그래야 자신들이 추천한 3명의 사외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KT&G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임준호 변호사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신청인(아이칸 씨 측)이 당초 일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사외이사를 구별 없이 뽑아 줄 것을 요청해 놓고 이제 와서 모두 집중투표로 선출해야 한다(일괄투표방식)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감사위원과 일반 사외이사를 나눠서 뽑은 건(분리투표방식) 문제가 없다.”

○ ‘완전 구술변론’과 ‘전자재판’ 도입

이날 재판에는 법원 최초로 ‘완전 구술(口述)변론’과 전자재판 방식이 도입됐다.

완전 구술변론이란 사건 당사자들 간의 공방이 재판부와 방청객들이 바라보는 법정 안에서 바로바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민사재판에서 원고와 피고의 공방은 ‘서면(서류로 만든 답변서)’으로 주고받는 것으로 진행돼 왔다.

대전지법은 구술변론을 지원하기 위해 법정 양편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법정 가운데에는 실물화상기(서류 등을 확대시켜서 스크린에 나타내는 기계)를 설치했다.

실물화상기 위에 올려놓은 증거 서류들은 곧바로 빔 프로젝터를 거쳐 양쪽 스크린에 나타나 판사, 양측 대리인은 물론 방청객들도 재판의 모든 서류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 아이칸 주당 7만 원에 인수 제안

아이칸파트너스, 스틸파트너스 등 4개 펀드로 이뤄진 ‘아이칸 연합군’은 공개변론이 열린 이날 KT&G 측에 주당 7만 원 이상에서 매수 협상을 할 수 있다고 새롭게 제안했다. 전에 제시한 6만 원에서 1만 원 오른 액수다.

아이칸 씨 측은 “이미 최소 20억 달러(약 2조 원)를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개매수 통지는 아니다”라고 못 박아 실제 공개매수를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KT&G를 압박하려는 카드로 보인다.

양측 법정공방의 결과는 14일 나온다.

아이칸 씨 측이 이기면 17일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선임은 다뤄지지 않고 추후 다시 논의된다. KT&G가 이기면 예정대로 일반 사외이사 2명만 집중투표제로 선출한다.

재판이 끝난 뒤 송현웅 변호사는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했고 임준호 변호사는 “머리싸움이 치열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기다릴 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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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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