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개장한 서울 중구의 A의류전문상가. 지상 7층까지의 상가 가운데 1층을 제외한 2∼7층 매장은 일부 또는 전체가 비어 있다.
작년 문을 연 서울 은평구의 B대형상가도 지하마트와 영화관, 1, 2층 점포만 영업을 하고 있다. 3∼8층 점포는 대부분 비어 있다.
서울 서초구의 C복합쇼핑몰은 당초 작년 9월 개장하려다가 분양이 안 돼 아직까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상가 레이다’의 박대원 선임연구원은 “2003년 이후 전국에서 분양된 대형 상가의 분양률이 대부분 70%를 밑돌고, 공실(비어 있는 매장)도 전체 상가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분양이나 영업 부진을 이유로 법원 경매로 넘어가는 대형 상가도 속출하고 있다.
작년 초 경남 진주시에서 개장한 복합상가 ‘몰 에이지’는 전체 점포(469개) 가운데 3분의 2 가량이 미분양 상태로 자금난을 겪다가 지난달 경매에 나왔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법원경매정보업체 태인컨설팅 이영진 부장은 “작년까지 월 1∼3건 나오던 감정가 100억 원 이상 대형 상가 물건이 올해 들어 월 4, 5건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상가 권리금도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평당 권리금은 2004년 말 평균 336만3000원에서 작년 말 현재 평균 321만2000원으로 4.5% 떨어졌다.
상가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임대 수익을 기대하고 상가를 분양받은 소액투자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작년 서울 중구 명동의 D쇼핑몰에 상가를 분양받은 김모 씨는 요즘 소송 준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외국계 유통업체에 5년간 상가를 임대해 연 수익률 12%를 보장해 준다는 분양회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상가를 분양받은 게 화근이 됐다. 외국계 유통업체가 입점하지 않으면서 수익은커녕 손해 볼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소송을 낸 자영업자 안모 씨도 “회사가 임대를 책임진다는 말에 작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E쇼핑몰 내 상가를 분양받았으나 몇 달째 빈 상가만 바라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광섭 변호사는 “분양회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상가를 분양받았다가 손해 봤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의뢰인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대형 상가의 위기는 눈앞의 분양실적에만 매달리고, ‘분양 이후는 나 몰라라’ 한 부동산 개발업자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가를 2, 3평짜리로 쪼개 분양하다 보니 투자자들이 너무 많고, 상가의 특성을 살리지도 못했다. 상가 활성화 등 분양 이후 상가의 경쟁력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동산정보업체 ‘상가114’의 유영상 소장은 “최근 입점했거나 분양 중인 대형 상가들은 대체로 꼭대기 층에 영화관, 지하에 식품매장을 배치한다”며 “이는 8년 전 서울 광진구 구의동 강변 테크노마트에 적용해 성공한 배치 방식이지만 지금은 맞지 않는 매장 구성”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과 홈쇼핑 등 ‘무(無)점포 유통업’의 비약적인 발전도 위협 요소. 빠른 속도로 매장 수를 늘려 가는 할인점도 대형 복합상가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대형 상가는 양탄자를 깔아놓고 찌그러진 냄비를 팔고 있다.”
한국유통학회 변명식(장안대 교수·프랜차이즈학과) 회장은 “대형 상가는 백화점에 버금가는 시설을 해놓고도 상품이나 판매 방식은 재래시장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상가 활성화를 위해서는 상가 운영 노하우가 있는 전문업체가 책임지고 상가 관리를 맡아야 하고, 이를 통해 체계적인 판매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 용산역사 ‘아이파크 몰’의 위기해법
최대주주 설득 직영전환
점포주에 백화점식 교육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 민자역사는 대형상가의 위기와 해법을 동시에 보여 준다.
2004년 10월 동양 최대 규모(8만8000평)의 전자상품 전문매장을 표방하면서 ‘스페이스9’이라는 이름으로 의욕적인 출발을 했지만 고객을 끌어 모으는 데 실패했다.
서울 청계천과 용산에서 잔뼈가 굵은 전자상가 상인들은 ‘호객’ 형태의 영업 방식을 고집했다. 관리를 맡은 ‘현대역사’(현재는 아이파크 몰로 개명)도 “영업은 분양받은 사람의 몫”이라며 상가 활성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빈 매장은 늘어가고 임대료 수입은 점차 줄어들었다.
현대역사가 ‘정신을 차린’ 것은 작년 10월 최동주 사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최 사장은 20년간 현대백화점에 있으면서 점포 13개를 낸 유통전문가다.
그는 “이대로 가면 모두 망한다”며 최대주주인 현대산업개발을 설득해 상가를 직영하기로 결정했다. 600억 원을 들여 매장 구성을 바꾸고 이름도 ‘아이파크 몰’로 변경했다.
상인들에게는 상가운영권을 위탁하도록 설득했다.
올 1월 말 4∼6층에 있던 의류매장을 ‘패션 스트리트’로 바꿔 개장했다.
꾸즈 리안뉴욕 더수트하우스 등 젊은층에 인기 있는 브랜드의 매장을 입점시키고 재래시장 같던 분위기도 확 바꿨다.
현대역사는 3만3000평에 이르는 전자상가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온라인 쇼핑과 할인점 등에 고객을 많이 빼앗겼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그 대신 빈 공간에는 가구 인테리어 패션 잡화 등을 판매하는 생활용품 전문매장을 유치하기로 했다. 지난달 8일에는 전자상가 2층에 혼수용품 전문매장 ‘코디센’이 개장했고, 올 7월에는 현대역사가 직영하는 패션백화점도 문을 연다.
점포주나 판매원들을 대상으로 백화점식 판매 교육도 한다. 또 가까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공동 마케팅을 펼치고 세계 첫 온라인 게임장, 원어민 영어교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내놓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최근 아이파크 몰 주말 고객 수는 1년 전에 비해 3배 늘고, 매장 매출은 2배가량 증가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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