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파리에도 500∼600유로짜리 비싼 휴대전화가 있습니다. 1유로에 팔리는 것은 일단 구형 모델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2002년 4월에 내놓은 이른바 ‘이건희 폰’은 한국에서는 사라졌지만 프랑스에선 아직도 팔리고 있더군요.
샹젤리제에서 단돈 1유로에 세계 주요 기업들의 휴대전화를 만날 수 있는 이유는 통신회사들의 치열한 경쟁 때문입니다.
SFR나 스페인 오렌지 등 유럽의 주요 통신사들은 고객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휴대전화라도 어느 통신사에 가입하느냐에 따라 가격과 계약조건이 달라집니다.
제품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1유로에 휴대전화를 파는 데는 통신사들이 주는 보조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제조업체는 휴대전화를 통신사에 100유로에 팔았다 해도 통신회사들이 장기 가입 등을 조건으로 가입자에게 헐값에 파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통신사를 옮겨가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공짜 휴대전화’가 나와 문제가 된 적이 몇 번 있었지요.
파리의 휴대전화 시장을 보면서 국내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휴대전화 보조금 지급 문제가 생각났습니다. 정부는 오랫동안 시장 안정을 이유로 보조금을 규제했습니다. 27일부터 18개월 이상 가입자에게는 보조금이 부활하지만 액수를 둘러싸고 또 논란을 빚고 있죠. 통신사는 불법 보조금 때문에 과징금을 얻어맞고, 조금 시들해지면 다시 보조금을 뿌리고….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지 않으려면 아예 유럽처럼 시장에 맡겨 놓는 게 어떨까요. 소비자들의 선택 폭도 넓어지고 정치권이나 정부도 선거를 앞두고 국민에게 생색내는 척하면서 보조금을 슬그머니 풀어 주는 일도 없을 것 같고 말입니다.
파리=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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