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올해까지는 ‘시장개혁 3년 로드맵’에 의해 대기업 정책이 집행되기 때문에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 시행될 ‘포스트 로드맵’을 만드는 작업에는 권 위원장의 소신과 판단이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인 그는 공정위원장이 되기 전 “공정위는 재벌 규제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라 시장의 경쟁 질서를 바로잡는 곳”이라는 소신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공정위의 정책과 ‘위세’에 내심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던 대기업들은 권 위원장을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고 일단 기대감을 갖고 있다.
당초 재계는 전직 공정위 간부 가운데 기업 현실을 잘 아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 중에서 공정위원장이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권 위원장의 교수 시절 발언을 검토한 뒤 그가 우려할 정도의 반(反)대기업 성향은 아니라고 판단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된다’는 평가다.
하지만 권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 유지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기업들은 적지 않게 긴장했다.
그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출총제가 순환출자를 막기 위한 적합한 제도인지 의문이지만 순환출자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없는 한 당장 폐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최근 출총제의 유효성을 다시 검토하는 등 전반적으로 기업 규제 완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권 위원장의 언급이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당은 정동영 당의장 체제 출범 이후 강봉균 정책위의장 주도로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나가는 방법을 찾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 왔지만 당내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부 여당 의원들은 “규제 완화 정책은 공정위에 일임해야 한다”거나 “출총제를 포함한 대기업 규제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재계는 권 위원장이 행정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다소 걱정하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권 위원장이 불공정 행위 등 기업의 부정적인 행위에 대해 학문적으로만 연구를 해 왔기 때문에 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을 펴나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권 위원장이 기업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기업 현실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며 “앞으로 공정위 정책은 기업들이 마음껏 경쟁하며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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