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청와대-與圈 잇단 양극화 거론 너무 부담돼”

  • 입력 2006년 3월 22일 03시 00분


요즘 대기업 주요 임원들은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여당에서 잇달아 나오는 이른바 ‘양극화 문제’ 발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에 영향력이 큰 정부 여당 고위인사들이 양극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조만간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양극화 시대의 동반경영’이라는 주제의 강연까지 할 예정이어서 재계는 더 부담을 갖고 있다.

상당수 기업인은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사석에서는 “기업이 돈을 벌어 고용하고 투자하는 본질적 경영 활동 이외의 사안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본보 취재 결과 주요 그룹들은 정부 여당의 양극화 메시지에 부응하기 위해 별도의 대규모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미 사회공헌 계획을 발표한 삼성그룹에 이어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SK그룹도 다음 달에 사회공헌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다음 달 초 전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매월 일정액을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발표할 계획이다. SK도 그룹 수뇌부의 지시로 ‘참신한’ 사회공헌 방안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LG, 한진, GS, 금호아시아나그룹 등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반 경영’을 구체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삼성은 22일 ‘삼성법률봉사단’을 발족하는 데 이어 다음 달 초에는 전 계열사의 사회공헌 활동 계획을 종합해 발표하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8000억 원 사회 헌납과 잇따른 사회공헌 후속 대책 발표가 정부 여당의 양극화 문제 제기와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 것이 우연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통령이 신년 경제계 모임에서 ‘앞으로 기업에 우는소리 좀 하겠다’고 했고, 양극화를 주제로 강연까지 한다는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정부에서 기업에 직접적으로 양극화 대책을 주문한 것은 아니지만 기업인들이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의 자체 판단에 따른 사회공헌 활동은 좋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가 많은 계층의 환심을 사려는 듯한 정부와 여당의 ‘양극화 장사’에 기업까지 이용돼야 하느냐”고 말했다.

중앙대 경제학과 홍기택(洪起澤) 교수는 “정부가 기업의 사회공헌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일종의 준조세에 해당한다”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서 투자, 고용, 세금을 통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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