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제품의 컨버전스 시대, 복잡해지는 기능과 서비스의 사용 방법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것이 제품 디자인의 좌우명이 되고 있다. 아무리 기능이 우수해도 작동 방법을 쉽게 알 수 없는 제품은 ‘실패작’이나 다름없다.
정보기술(IT) 업계가 최근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사용자 맞춤형 메뉴 화면) 디자인에 인력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GUI는 기능과 서비스의 상태와 작동 방법을 그림과 문자로 쉽고 간단하게 보여 주는 도구다.
GUI를 쉽고 재미있게 디자인하는 것은 곧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최근에는 GUI 디자인을 통해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원터치로 해결하라
GUI 디자인의 첫 조건은 사용자가 자주 쓰는 기능에 한 번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LG전자의 타임머신TV는 핵심 기능을 ‘X스튜디오’라는 GUI에 정리했다.
X스튜디오는 방송안내 예약목록 녹화목록 음악파일 등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들로만 초기 화면이 디자인돼 있다. 자주 안 쓰는 기능을 사용하려면 ‘설정’ 메뉴로 들어가야 한다. 일일이 리모컨의 버튼을 찾거나 모든 기능이 한꺼번에 떠 있어 복잡한 느낌을 준 과거의 GUI보다 집중도와 접근성을 개선한 것이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심재희 인터페이스그룹장은 “메이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간에는 기능 차이가 거의 없는 추세여서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을 쉽게 사용하도록 하는 GUI 디자인이 경쟁력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도 원터치 GUI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휴대전화의 ‘네이트’(SK텔레콤) ‘매직엔’(KTF) ‘이지아이’(LG텔레콤) 버튼만 누르면 대기 화면에서 별도의 조작없이 곧장 무선 인터넷 통합 포털 화면으로 이어지도록 GUI를 디자인하고 있다.
○절제미로 프리미엄 이미지 강조
‘절제된 컬러로 다가간다.’ 최근의 전자제품 GUI 컬러 트렌드다. 예전에는 현란한 컬러와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튀는 GUI’가 많았다.
휴대전화 메뉴화면의 바탕 컬러를 밝은 하늘색 오렌지 초록으로 설정했으며 아이콘에도 밝은 오렌지나 파랑 빨강 핑크를 적용했다. 아이콘을 선택하면 아이콘이 반짝이는 3D 이미지로 바뀌며 크게 움직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절제된 컬러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는 GUI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메뉴선택 화면의 바탕을 블랙이나 화이트로 설정하고 아이콘에는 명도가 낮은 감색 실버 오렌지 녹색 등을 적용한다. 선택된 아이콘의 모양도 심플하고 움직임도 2.5D 수준이어서 현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전화인 블루블랙2와 초콜릿폰은 모두 메뉴화면의 GUI가 안정감 있는 컬러와 아이콘으로 디자인돼 있다.
심 그룹장은 “프리미엄 이미지는 화려함이 아닌 절제미에서 나온다”며 “GUI에서도 절제된 컬러를 적용해 제품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통신사들은 편리함을 강조하기 위해 GUI에 안정감 있는 컬러를 적용한다.
SK텔레콤, KTF, LG텔레콤은 모두 무선 인터넷 포털 GUI를 화이트 바탕에 블랙 텍스트를 기본으로 디자인했다. 아이콘 크기도 작고 움직임도 거의 없다. 포인트를 주는 라인이나 숫자에도 명도가 낮은 빨강 파랑 등을 썼다. 화려하고 움직임이 큰 아이콘은 사용 속도를 느리게 하며 작은 휴대전화 화면에 균형있게 배치하기도 어렵다. KTF 신규서비스팀의 임상현 과장은 “무선 인터넷 접속이 상용화되면서 화려함보다 편리함이 GUI 디자인의 열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캐릭터로 재미있게
‘캐릭터로 재미를 준다.’
LG전자의 에어컨 휘센과 냉장고 디오스의 GUI에는 각각 ‘휘니’라는 펭귄과 북극곰이 살고 있다. 이 캐릭터들은 GUI상에서 제품의 작동 상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에어컨을 가동하면 펭귄이 스노보드를 타고, 냉장고에서 물을 따르면 북극곰이 물을 마시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용자가 생일 등 이벤트가 필요한 날을 입력하면 해당 일에 맞춰 캐릭터가 GUI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블루블랙2에는 ‘마이펫’이란 강아지가 살고 있다.
마이펫은 강아지 캐릭터 사육 프로그램인데 먹이를 주고 기르는 것은 물론 교배도 시킬 수 있다. 또 자신이 기른 강아지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줄 수도 있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이건식 선임연구원은 “귀여운 캐릭터를 전자제품 GUI에 등장시키면 고객들이 쉽고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고 제품의 브랜드 친근감도 커지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윤종관 SK텔레콤 과장▼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뜻입니다.”
SK텔레콤 고객경험-태스크포스(UE-TF)팀 윤종관(사진) 과장은 GUI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최근 첨단기기들의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GUI 디자인’은 IT 분야의 핵심 역량이 되고 있다. 올해 업계가 예상하는 시장 규모만 해도 300억 원.
올해 초 신설된 UE-TF팀의 임무는 고객들의 휴대전화 사용 패턴을 분석해 좀 더 쉽고 편리하게 메뉴화면을 꾸미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설문조사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고객을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지하철 버스 등에서 눈동냥이나 귀동냥으로 소비자들의 불편 사항 및 희망사항을 ‘현장 접수’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LG전자 휴대전화의 ‘초성이름 검색기능’, 모토로라 휴대전화의 ‘간편 벨소리 다운로드 기능’,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데이터 저장기능’ 등이다.
초성이름 검색은 ‘홍길동’의 전화번호를 찾을 때 ‘ㅎㄱㄷ’을 입력해 찾는 방식. ‘홍’을 입력해 검색하는 것보다 시간도 절약되고 정확도도 매우 높다. 편리한 사용법은 휴대전화 판매뿐 아니라 통신서비스 이용 증가로도 이어진다.
간편 벨소리 다운로드 기능은 ‘벨소리 변경’ 화면에서 바로 인터넷 벨소리 다운로드 화면으로 연결된다. 통상 인터넷을 먼저 접속한 뒤 벨소리 다운로드 화면을 찾아가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시간과 이에 따른 이용 요금이 추가로 발생하던 불편을 줄일 수 있다.
윤 과장은 “조사를 해 보면 ‘직접 써 보니 좋더라’는 사용자들의 구전(口傳) 마케팅 효과가 얼마나 큰지 실감한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기존의 연령대별보다 라이프스타일별로 소비자 유형을 나눠 제품 개발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일부 제조사도 GUI개발팀을 신설하는 추세다. 이들은 통신사들과 공동으로 디자인 개발을 진행하기도 한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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