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신임 회장의 선출 과정에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한국무역협회가 다시 술렁이고 있습니다. 이번엔 출자회사의 감사위원에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내려앉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는 그동안 주요 주주인 무협의 몫이었는데 청와대에 빼앗겼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문제의 회사는 “비상장회사의 감사 선임은 대주주의 경영권에 해당한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 자리에 왜 하필 청와대 사람이냐’라는 질문에는 딱 부러진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무협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소유해 운영하는 한무쇼핑의 2대 주주입니다. 백화점 터를 제공하고 한무쇼핑의 지분 33.4%를 보유하게 된 것입니다.
무협은 그 대가로 한무쇼핑의 감사위원 추천권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위원은 사실상 무협 측 인사의 몫이었습니다.
한무쇼핑은 2002년 서울 양천구에 현대백화점 목동점을 새로 내고 지난해에 감사위원 자리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무역센터점 감사와 목동점 감사를 별도로 둔 것이지요. 당시 목동점 감사위원에도 2대 주주인 무협 측 인사가 선임됐습니다.
그러나 한무쇼핑은 22일 이사회를 열어 목동점 감사위원에 이른바 ‘386 출신’인 44세의 전직 청와대 행정관을 앉혔습니다. 3년 임기의 감사위원이 1년도 채 안돼 ‘권력의 실세’로 뒤바뀐 셈입니다.
이에 대해 한무쇼핑 고위 관계자는 “목동점 감사위원이 무협의 또 다른 출자회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됐기 때문이지 기존 임원을 쫓아낸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무쇼핑처럼 조그만 비상장회사에서 감사위원 등 임원에 대한 선임권은 사실상 대주주의 권한”이라면서도 “청와대를 떠난 뒤 갈 곳이 없어 개인적 친분으로 받아줬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새 수장(首長)을 맞아 힘찬 출발을 다짐한 무협은 술렁이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무협의 한 직원은 “전직 산자부 장관 출신의 회장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오히려 제 밥그릇마저 빼앗긴 꼴이 됐다”며 “새로 들어온 사람이 ‘청와대 낙하산’이라니 더 허탈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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