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초일류 기업이 없었다면 우리의 생활은 아직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반(反)기업 정서가 강한 편이다.
기업이 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이고 재투자를 통해 중소기업과 근로자에게 비용을 지불해 경제 전체를 살찌우고 있지만, 적지 않은 국민은 아직도 대기업의 문제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대기업은 나라 경제에 얼마나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일까.
본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국내 대기업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바를 실증적으로 살펴봤다.
○ 제조업 취업자 14.2% 상장사 근무
전경련에 따르면 전체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422만 명.
공정거래위원회가 상호출자를 제한하는 기업집단을 기준으로 30대 그룹에 근무하는 직원은 전체 제조업 근로자의 16.7%인 70여만 명이다. 제조업 근로자 6명 중 1명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셈이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480개 기업의 직원은 60여만 명. 이 가운데 30대 기업의 근로자는 72.7%인 43만 명에 이른다. 이들 통계는 대기업이 국가 전체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준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인 삼성은 단일 그룹으로만 14만9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5인 이상 사업체를 기준으로 지난해 말 발표한 국내 취업자 2255만6000명 중 0.7%가 ‘삼성맨’인 것이다.
삼성 계열사 가운데는 삼성전자가 8만594명으로 직원이 가장 많다. 2005년 한 해에만 1만8700명을 신규로 채용했을 정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3조 원 이상을 인건비로 지출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도 9만6000여 명을, LG그룹은 8만600여 명을 각각 고용하고 있다. 3만16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LG전자는 지난해 1조7000억 원을 인건비로 썼다.
○ 대기업이 전체 수출의 65%
대기업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도 큰 공을 세우고 있다. 기업이 번 달러는 외환보유액으로 쌓이고, 국내에 재투자되거나 고용을 늘리는 데 쓰인다.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수출액 2847억 달러 중 상장사 대기업의 수출 비중은 약 65%(1850억 달러)나 된다.
대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월드 베스트급’ 제품인 반도체, 선박, 자동차, 석유화학, 컴퓨터, 무선통신기기 등 6대 품목의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51%를 차지했다.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등 4대 그룹의 수출액은 약 1500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절반을 넘어선다. 외화의 절반 이상을 4대 그룹이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와 휴대전화 분야에서 세계 최고 브랜드로 확고한 위치를 다진 삼성전자는 지난해 498억 달러를 벌어들여 전체 수출의 17.5%를 차지했다.
현대차와 LG전자도 지난해 각각 233억 달러와 178억 달러를 벌어들여 ‘달러 박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연구개발 투자의 70%는 민간기업
지난해 한국은 약 200조 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이 중 70% 수준인 140조 원을 민간 기업이 투자한 것으로 전경련은 추정하고 있다. 20%가량은 정부가, 나머지는 대학과 연구기관 등이 투자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이 지난해 62조3800억 원을 R&D에 투자했다. 이 중 약 14조 원은 4대 그룹에서 나왔다. 올해도 600대 기업은 지난해보다 17.2% 늘어난 73조7000억 원을 R&D 비용으로 쓸 예정이다.
지난해 7조3000억 원을 R&D에 투자했던 삼성그룹은 2010년까지 47조50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R&D 인력도 3만 명을 더 늘릴 계획.
LG그룹도 최근 구본무 회장이 참석한 ‘LG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서 올해 3조2000억 원을 R&D에 투자하고 내년까지 7조3000억 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밝혔다. 연구 인력도 2만4000명을 확충할 방침이다.
○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경영으로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말 국내 10대 그룹이 중소기업에서 올 한 해에만 76조9300억 원어치를 구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대 그룹과 거래하는 1∼3차 중소 협력업체 수는 3만여 개로, 고용 인원만도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산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의 제품을 구입하면 협력업체는 벌어들인 돈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투자를 하게 돼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 곳곳이 힘을 받게 된다.
특히 대기업들은 중소 협력업체와의 ‘상생 경영’을 위해 올 한 해만 1조 원 가까운 돈을 투자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대규모 사회공헌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소 협력회사에 대해 파격적인 지원안을 만들고 있다. 5월 중 발표될 ‘중소기업과의 상생 방안’에는 연간 5000억 원 이상을 지원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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